국내 대형 반도체 기업에서 PC용 D램 영업을 하고 있는 A부장은 D램 사업의 변동성을 새삼 실감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D램 공급부족 사태로 전 세계 고객들이 직접 방한해 ‘가격은 상관없으니 우선적으로 우리에게 물량을 달라’는 요청이 쇄도했으나 하반기에는 본인이 고객을 일일히 다시 찾아가 ‘우리 물량을 먼저 사달라’고 읍소해야 할 처지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하반기 1Gb DDR3 D램 고정거래가격은 0.97달러까지 하락했다. 최고치였던 지난 5월 2.72달러에 비해서는 70%, 3개월 전(1.97달러)에 비해서는 반토막이 났다. 지난해 상반기에 PC 수요 확대와 D램 기업들의 공정 전환 어려움에 따른 공급량 제한 등으로 D램 가격은 거침없이 상승했지만 하반기 들면서 유럽 및 미국 경기 불황에 따른 PC 수요 부진, 공정 전환에 따른 D램 공급량 확대가 맞물리면서 급격한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대부분의 시장 전문가나 업계 전문가는 D램 가격이 새해 상반기에 바닥을 치고 다시 상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권오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사장은 지난달 초 “올해 2분기에 D램 가격이 반등하기를 기대한다”며 “상반기에 안 좋고 하반기에 좋은 ‘상저하고’ 현상이 올해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영주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1월부터 D램 가격 하락폭이 점차 둔화될 것”이라며 “1Gb DDR3 기준으로 2월까지 80센트 초반까지 하락한 후 반전될 것”으로 예상했다. 대부분의 증권사들도 2분기부터는 가격 상승을 점치고 있다.
이 같은 근거는 D램 가격 하락으로 PC에 탑재되는 D램 용량 증가와 스마트폰·스마트패드 등 새로운 기기 판매 호조에 따른 것이다. 또 이미 대만 기업이나 엘피다의 경우 현재 D램 가격이 현금창출 원가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감산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주요 이유다. 실제 엘피다는 감산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가격하락폭이 이보다 더 클 것이라는 의견도 적지 않다. 아이서플라이는 5일 “현재 21.50달러인 2GB DDR3 D램 모듈이 오는 6월에는 15달러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하락할 것”이라며 6개월간 30% 가까이 가격이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Gb DDR3 D램 단품으로 70센트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내 메모리 기업들의 손익분기점이 0.8달러 안팎으로 알려져 국내 기업들도 적자 전환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PC 수요가 여전히 부진한데다가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등이 계속 미세공정 전환을 통해 물량을 쏟아낼 것이라는 근거에 기인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D램 가격 하락의 키는 16%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엘피다나 점유율이 미미한 대만 기업의 감산여부가 아니라 최대 D램 기업인 삼성전자가 향후 D램 생산 증가폭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삼성전자 전략에 따라 D램 가격 반등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