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바타’는 2642억원을 들여서 3조원을 벌어들였다. 온라인게임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출시된 지 7년째지만 세계 각국에서 매년 1조원 이상을 거둬들인다. 흥행 여부에 따라 대박을 터뜨리기도, 제작비를 모두 날리기도 하지만 콘텐츠 산업은 많은 사람의 창조성이 모여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대표적 지식산업이다.
우리나라 콘텐츠의 세계 시장 경쟁력도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지난 2007년 20억달러를 밑돌던 콘텐츠 수출액은 2010년 30억달러 수준으로 높아졌다. 특히 드라마 일변도이던 한류는 최근 음악과 게임, 캐릭터 등으로 다변화됐다.
정부는 문화 선진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세계 5대 콘텐츠 강국’이라는 야심찬 목표를 세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그 전초기지다. 진흥원을 이끄는 선장은 이재웅 원장이다. 이 원장은 강단에서 정치 무대로, 다시 기관장으로 변신했다.
이 원장은 일관성이 있다. 지난 2009년 4월 취임 후 가장 강조했던 ‘스토리텔링’과 ‘북미시장’이라는 두 가지 화두를 아직도 품고 있다. 올해 이 원장은 두 가지 화두를 다시 검증하려 한다. 2009년이 준비, 2010년이 첫 번째 도전이었다면 올해는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는 시기라는 말이다.
이 원장이 스토리텔링을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영화나 음악, 게임 등 장르는 다양하지만 콘텐츠의 경쟁력은 ‘재밌는 이야기’에서 나온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북미 시장에 집중하는 배경도 명확하다. ‘가장 큰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생각하는 2011년 청사진을 들어봤다.
-2010년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무엇입니까.
▲신화(神話)창조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나라의 스토리텔링 기반을 튼튼하기 위해 만든 사업입니다. 2009년에 비해 2010년에 뽑힌 작품의 수준이 놀랄 만큼 좋아졌습니다. 수상작은 이제 영화나 애니메이션 등 작품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아울러 스토리 창작 센터 운영이나 콘텐츠 번역 사업도 기억에 남는 성과입니다.
-곧 취임 2년입니다. 처음 목표하신 성과는 어느 정도 이뤘습니까.
▲작년까지 70%를 바라보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올해 말까지 80%를 돌파해야 하는데 잘 될 지 걱정입니다. 임기까지 목표를 다 달성하려는 생각은 욕심입니다. 다만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체질을 건강하게 만들고 한 단계 높은 벽의 해외 시장에 진입한다는 애초의 다짐은 반드시이뤄내겠습니다.
-취임 후 스토리텔링은 계속 강조하셨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까.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콘텐츠의 근간은 스토리입니다. 우리니라의 콘텐츠 제작기술은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기획과 시나리오 단계가 아직 약점입니다. 스토리텔링 능력이 이를 보완합니다.
-임기 중에 북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겠다는 계획은 유지됩니까.
▲당연합니다. 북미시장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북미시장을 배제한 콘텐츠 산업의 세계화는 무의미합니다. 작년에 지원 규모가 컸던 ‘라스트 갓파더’ 역시 북미 시장을 겨냥한 콘텐츠입니다. 올해도 이 기조는 이어집니다.
-북미시장 공략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관적 전망이 있는데 과연 승산이 있습니까.
▲북미시장 콘텐츠는 대자본이 필요합니다. 이미 현지 업계는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 자본 조달, 혹은 제작 자체를 해외에서 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이 기회를 잡아야 합니다. 올해는 중국과의 협력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중국 콘텐츠 기관과 구체적인 공동 사업 계획이 곧 나옵니다. 북미 시장 공략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진 한중 양국이 힘을 합치면 좋은 성과가 기대됩니다.
-라스트 갓파더 지원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진흥원의 직접 지원 금액은 12억원입니다. 물론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많은 금액이죠. 하지만 이 작품은 북미 시장 진출이라는 전략적 접근으로 봐주길 바랍니다. 라스트 갓파더의 미국 흥행 결과는 아직 미지수지만 헐리우드의 특급 배우가 출연하고 주요 배급사가 나서는 작품은 처음입니다. 흥행이 생각보다 저조하더라도 라스트 갓파더 지원 금액은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비료라고 확신합니다.
-올해 가장 주목할 지원 작품이 나왔습니까.
▲올해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스토리공모전 대상 수상작인 ‘일곱 난장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북미 시장에 내놓겠습니다. 제작비가 250억원 정도 들 전망입니다. 직접 지원 이외에 콘텐츠 펀드를 이용하는 방안도 고려중입니다.
-단지 자금 지원만으론 한계가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해외 배급망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잘 만든 콘텐츠도 유통이 안되면 무용지물입니다. 북미 메이저 배급사와 우리나라 콘텐츠 제작사를 연결해주는 산파 역할을 자임하고자 합니다. 또 콘텐츠 산업의 흥행성에 의구심을 품는 금융 업계를 설득하는 일도 함께 추진할 예정입니다.
-게임처럼 경쟁력 있는 분야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게임 산업은 민간이 워낙 잘 하고 있습니다. 굳이 진흥원이 앞서서 끌어갈 필요가 없습니다. 뒤에서 보조하는 역할이면 충분합니다. 해외 시장 데이터베이스처럼 업계가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을 지원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최근 조직이 바뀌었습니다. 올해 조직의 운영 목표는 무엇입니까.
▲자율성 속에 분명한 책임성을 갖는 조직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산하기관은 사업 하나하나를 중앙부처의 허가를 받아 진행해야 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이를 좀 더 큰틀에서 바꾸는 방안을 모색하는 중입니다. 물론 사업 성과의 책임은 명확히 져야죠. 또 팀간 유기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일도 선결 과제입니다.
<차세대 콘텐츠 개발 사업>
올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할 일 가운데 차세대 콘텐츠 개발 사업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민간이 하기 어려운 콘텐츠 제작 기술을 집중 개발하고, 이를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방안을 찾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단계별로 진행된다. 우선 산업계 수요 조사를 거친 뒤 콘텐츠 제작에 필요한 기술을 도출하고, 개술개발 기관을 지정해 지원할 방침이다. 395억원이라는 큰 예산이 배정됐다. 이를 통해 콘텐츠 산업현장에 즉시 적용 가능한 사업화 중심의 기술을 개발한다는 목표다.
글로벌프로젝트 기술개발도 병행된다. 글로벌 진출이 가능한 콘텐츠의 상품성, 품질, 생산성 향상을 위해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제작기술 개발한다. 아울러 개발된 기술이 콘텐츠제작과 접목되도록 연계하는 프로젝트도 지원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진흥원은 연구개발 성과를 이전받아 사업화를 추진할 수 있도록 기술기업과 콘텐츠기업의 콘텐츠제작 컨소시엄 구성을 지원할 예정이다.
가장 역점을 주는 대상은 차세대 플랫폼 콘텐츠 선점과 3D 콘텐츠산업이다. 스마트폰, 스마트TV 등 차세대 상호작용 기술, SNS 기반 참여형 콘텐츠 서비스 기술개발 지원한다. 또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 차세대 플랫폼 기반의 게임개발 전문 인력을 양성한다. 연간 600명에 달하는 규모다.
아울러 3D 제작인프라 구축부터, 기술개발, 제작지원, 인력양성에 이르는 수직계열화 지원이 포함된다. △3D 방송영상 스튜디오와 3D 모바일게임 인프라 구축 △3D 콘텐츠 기반기술과 차세대 미래기술 개발지원 △교육·환경·헬스 등 공공분야 3D 콘텐츠 제작지원 등이 대표적 사업이다.
3D 콘텐츠 제작 전문 인력 양성도 빠질 수 없다. 약 300여명의 산업계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단기과정을 운영하고, 3D 콘텐츠 교수인력 양성을 위한 중기과정도 마련된다.
<이재웅 원장은>
이재웅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은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73년 부산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행정학과에 입학, 같은 대학에서 행정학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부산 동의대 행정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2002년에는 동의대학교 초대 영상정보대학원장을 역임하며 방송영상 전문인력 양성에 주력했다.
이 원장은 이 시기에 강단의 학자로 그치지 않고 콘텐츠 산업의 특성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시작은 방송이지만 전파를 타고 흐르는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였던 셈이다. 이 원장은 이후 2004년 17대 국회의원에 당선, 문화관광위원과 방송통신특위위원으로 활동했다.
학자로서의 이론과 콘텐츠 인력을 양성한 노하우, 여기에 정치인으로서 쌓은 경험을 인정받아 2009년 4월 3개 기관이 합쳐진 한국콘텐츠진흥원 초대 원장에 선발됐다. 원장 취임 후 다수에게 자금을 나눠 지원하는 기관장의 관행을 깨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택하는 과감함을 보여줬다. 2010년에 심형래 감독의 ‘라스트 갓파더’를 집중 지원,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