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의 기본은 자유다.(The basis of a democratic state is liberty)’
서양 철학의 근간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우리 사회의 역사적 변화만 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언은 증명된다.
유신시대에는 통행금지 때문에 밤만 되면 국민 모두가 가택연금을 당했다. 군사정권 하에서는 통행금지가 폐지됐지만 표현과 사상, 집회와 결사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은 광범위하게 억압당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권이 만들어진 후 20년 가까이 지나면서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구속은 뚜렷하게 완화됐지만 인터넷 세상의 자유는 여전히 요원하다.
그 가운데 게임을 둘러싼 규제가 최근 사회 전반에 논란을 낳고 있다. ‘셧다운제’가 그 주인공이다. 잘 알다시피 셧다운제는 심야에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막겠다는 조치다. 도입 이유는 명확하다. 게임 중독으로 인한 청소년 피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임이 낳은 사회 문제의 확대는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과연 셧다운제가 청소년의 자유를 제한할 만큼 필요하고, 또 실효성이 있는가라는 점이다. 셧다운제 도입 찬성론자들은 이 문제를 뺀 채 ‘청소년의 주머니를 털어 배를 불린다’며 게임 업계의 무책임을 근엄하게 꾸짖는다.
우선 셧다운제 필요성을 따져보자. 과거 어떤 콘텐츠라도 대중화의 과정에선 부작용이 발생했다. 19세기에 영화가, 20세기엔 방송이 그랬다. 기성세대와 일부 정치인들은 콘텐츠가 청소년, 더 나아가 국민들의 정서를 갉아먹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모방 범죄뿐 아니라 살인까지 불러오는 장본인이라고 영화와 방송을 매도했다. 우여곡절이 이어졌지만 효과적 정책을 조금씩 마련하면서 영화와 방송은 우리 생활을 윤택하게 만드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다음은 셧다운제 실효성이다. 인터넷과 게임이 무엇인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안다. 국경이 없는 인터넷에 우리나라 청소년만 게임을 못하도록 한다는 발상 자체가 블랙 코미디다. 오죽하면 셧다운제 찬성론자들의 바람막이인 학부모들조차도 60% 가까이 셧다운제가 효과를 거두기 힘들며, 부모와 아이들 간에 자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평가할까.
왜 여성가족부와 일부 정치인들은 셧다운제를 고집할까. 바로 게임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콘텐츠는 경험해봐야 안다. 영화나 방송·만화·애니메이션 등 기존 콘텐츠는 대다수의 국민이 이를 즐겼다. 유독 게임만이 정책을 마련하는 사람과 결정하는 사람이 해본 적도 없는 콘텐츠다.
게임은 아무리 주홍글씨를 찍어도 현존하는 콘텐츠다. 이를 잘 즐기고 부작용을 없애도록 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필요성도 실효성도 빈곤한 셧다운제는 그 해답이 아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민관이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지혜를 모을 시기다.
장동준 정보통신담당 차장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