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국산화의 경제학

 한국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의 ‘오피스’ 가격은 미국보다 20%가량 저렴하다. 2006년엔 국내에서 팔리는 ‘MS 워드’ 가격이 전 세계에서 가장 싼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한국에는 한글과컴퓨터로 대변되는 국산 워드와 오피스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독점적 지위를 맘껏 뽐내는 MS도 한국에서는 경쟁자 때문에 몸을 낮춘다.

 최근 들어 데이터베이스관리솔루션(DBMS) 시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의 60% 이상을 독식한 오라클이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솔루션 가격을 20~30%가량 낮춰 제안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알티베이스·티베로 등 국산 DBMS가 주요 기간계 시스템에 속속 채택되면서 본격 경쟁체제를 갖췄기 때문이다.

 국산화는 바로 독점 시장 붕괴를 의미한다. 새로운 경쟁이 시도된다는 것 자체가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나다. 경쟁을 아예 엄두도 못내는 상황이 어떠할지 생각만해도 아찔하다.

 일본 대지진으로 전자 부품과 소재의 국산화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외산 종속 문제는 단지 높은 가격을 지불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이번 사태는 여실히 증명했다. 비싼 가격은 둘째로 치더라도, 대안이 없어 공장 가동률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국이다. 하지만 핵심 소재와 장비는 대부분 수입한다. 반도체 공정장비의 경우 국산화율이 고작 20%대에 불과하다. 대일 무역역조 규모는 2000년 113억달러에서 지난해 361억달러로 늘어났다. 오죽했으면 ‘밖으로 벌고, 안으로 밑지는 장사’라는 자조마저 섞여 나올까.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정부의 국산화 의지는 점점 약해지는 양상이다. 정부 고위 공무원들조차 “해외 솔루션이나 부품을 가져와 완제품이나 서비스를 빨리 개발해 수출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말을 내뱉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신산업으로 부상한 클라우드 컴퓨팅에서도 감지된다. 정부가 시장 활성화를 위해 수 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키로 했으나 대부분 공공기관에 클라우드 서비스를 선도적으로 도입하는데 할애됐다. 외산 솔루션을 쓰더라도 앞선 서비스를 먼저 개발해 역수출하자는 발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우리나라 IT서비스 대기업들이 해외 주요 프로젝트 입찰에 응했다가 면박을 당한 사연은 두고두고 회자된다. 입찰제안서에 IBM·HP·MS·오라클 등 미국산 솔루션만 잔뜩 올려놓으니 “도대체 한국기업으로서 차별화 포인트가 뭐냐”는 질문이 돌아왔다.

 최근 국내 한 중소기업이 기존 슈퍼컴퓨터보다 100배 빠른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슈퍼컴퓨터를 국산화해 화제다. 이 회사 CEO는 이 국산 슈퍼컴으로 수 조원대 세계 슈퍼컴 시장의 1위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 같은 포부가 현실화되지 않더라도 당장 100% 수입하는 외산 슈퍼컴 가격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우리나라 두뇌는 정말 우수해요. 좀 시간이 걸려도 원천기술 개발에 도전하면 얼마든지 세계 일류가 될 수 있어요. 문제는 정부든 기업이든 당장의 실적에 연연하다 보니 도전 문화가 점점 사라진다는 것이죠.” 중소업체 한 CEO의 지적처럼 우리 정부는 ‘국산화 백년대계’를 갖고 있는지 한번 되돌아볼 시점이다.

 장지영 정보통신담당 차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