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IMEI 블랙리스트 도입 검토"…휴대폰 유통구조 변화 예고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소비자가 휴대폰 제조사에서 직접 단말기를 구입해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국제단말기식별번호(IMEI) 블랙리스트’ 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13일 밝혔다.

 최 위원장은 이날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경재 의원(한나라당)이 IMEI 블랙리스트 제도 등을 연계해 통신요금 인하를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런 문제를 포함해 가능한 요금인하 폭이 얼마나 될 것인지 깊이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IMEI는 제조사 출고 단계에 단말기에 부여되는 15자리 식별번호로 그간 국내에서는 이동통신사가 자사에 등록된 단말기만 개통해주는 ‘화이트리스트’ 방식으로 활용됐다.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직접 제조사에서 구입한 단말기나 타인으로부터 선물받은 단말기도 이통사의 화이트리스트에 등록한 후에만 사용할 수 있었다.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면 사용자는 도난·분실폰으로 등록된 IMEI를 제외한 모든 단말기에 기존에 사용하던 유심(USIM)카드를 꽂아 즉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의원은 “블랙리스트를 도입하면 이통사 위주의 단말기 유통구조를 혁신해 최소 3% 정도의 통신요금 인하효과가 발생한다”며 “이를 하루빨리 도입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확대하고 추가 통신요금 인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휴대폰 유통구조 달라진다=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면 이통사 중심의 휴대폰 유통구조가 휴대폰 제조사·유통전문점들이 직접 판매하면서 유통에 참여하는 ‘자율경쟁’ 체제로 바뀌게 된다. 국내 대형 휴대폰 제조사들이 직접 유통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자체 가전 유통망을 보유하고 있는 대형 제조사들은 소비자에게 자사 브랜드의 휴대폰을 직접 판매하는 전국 단위의 전문 판매 매장을 구축하게 될 전망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최근 3G 통신모듈이 없는 와이파이 전용 모델과 모바일 제품의 액세서리 제품 판매를 위해 멀티숍인 ‘삼성 딜라이트샵’을 새롭게 여는 등 자체 유통점을 확대하는 추세다. 따라서 블랙리스트 제도가 도입되면 대형 제조사들의 휴대폰 전문 매장 신설은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업계 전문가들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자체 가전 유통점 내부에 기존에 마련된 휴대폰 매장을 확대하거나 별도 전문 매장을 신설하는 두 가지 형태가 병행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자체 유통망이 많지 않은 팬택이나 외산 단말기 업체들은 ‘제휴’ 형태의 유통망 구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마트와 같은 대형 유통사에 입점하는 방식이나 이통사 직영이 아닌 일반 휴대폰 대리점과의 제휴도 가능하다. 이외에도 해외에서 출시된 단말기를 대량 도입해 판매하는 외산폰 전문 유통 사업자와 중고휴대폰 판매점들도 확대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제조사 전문매장을 통해 휴대폰 단말기를 구매할 경우, 이통사와 요금제 선택이 자유로워진다. 또, 이통사들이 대리점에 지급하는 인센티브와 제조사 장려금 등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단말기 가격과 통신요금이 인하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이 밖에 일명 ‘노예폰’이 줄어들면서 가입자 구속력이 떨어지게 돼 이통사들이 가입자 유치를 위한 서비스와 품질 경쟁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 위축 가능성 배제 못해=업계 전문가들은 제조사 판매가 확대되면 이통사들이 지불하는 보조금이 축소돼 전체 휴대폰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수년 전부터 휴대폰 보조금이 축소된 일본 시장은 휴대폰 판매량과 대리점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휴대폰 교체 시기도 2~3년으로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폰 제조사들도 자체 유통이 확대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이통사들의 보조금 축소로 이어지게 되면 전체 시장이 일시에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휴대폰 교체주기가 짧은 10·20대 사용자들은 보조금 지원이 줄어들면 구매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단말기 구매 비용이나 요금인하를 통한 기대효과에 비해 보조금 축소가 훨씬 더 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로 인해 업계 관계자들은 당분간 화이트리스트와 블랙리스트 IMEI가 혼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