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갑`이 먼저 양보하자

 동반성장이 산업계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LG는 18일 핵심계열사 경영진과 협력회사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동반성장 협약식을 열었다. 이에 앞서 지난주 삼성도 수원사업장에서 비슷한 행사를 개최했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중소기업을 위해 대규모 자금 지원을 골자로 각종 지원책을 내놓았다.

 당장 삼성은 6000여억원을 지원해 협력사 재무 건전화를 돕겠다고 밝혔다. LG도 거래 대금 100% 현금결제 유지 등 지원책과 함께 협력사 연구개발을 위해 올해부터 5년간 1000억원을 쏟아 붓기로 했다. 행사에는 공정거래위원장·동반성장위원장 등 정부 관계자가 참석했다.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최근 상생 경영에 부쩍 관심이 높아진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부에서는 ‘일회성 이벤트’라는 말도 나오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새로운 관계 정립이 시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

 과제는 실효성이다.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생에 이어 동반성장 방안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데는, 반대로 그만큼 아직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거래에서 불이익을 본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한 마디로 보편타당한 상거래 기준에서 벗어난 대기업 주도의 효율과 생산성을 위해 ‘쥐어짜기’식 거래가 도를 넘었다는 것이다.

 이는 따지고 보면 산업계에서 흔히 말하는 ‘갑을 문화’가 아직도 뿌리 깊이 박혀 있음을 보여 준다. 갑을 관계는 전형적인 수직적 조직 문화의 산물이다. 수직적 문화는 사실 기업 뿐 아니라 사회 전체를 지배할 만큼 깔려 있다. 대표적인 게 ‘줄 세우기’ 문화다. 많이 개선됐지만 아직도 나이 한두 살만 차이가 나도 형님, 선배로 대접 받기 원한다. 입사가 6개월만 빨라도 회사에서 목소리 톤이 달라진다. 심지어 군대에서 하루만 일찍 들어가도 후임자 앞에서 기득권자가 된다. 실력과 능력은 그 다음 문제다.

 그렇다고 수직적인 문화가 역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한 때 우리 경제를 성장시킨 주역이었다. 세계시장에서 후발업체로 1등을 재빠르게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기업 문화였다. 품질에 한 치의 오차를 허용하지 않는 제조업에서도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하면 된다”라는 신조로 톱-다운 방식으로 힘을 모았기에 전 세계가 놀란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뿐 만 아니라 다른 기업과 유연하게 협업해야 성공한다. 각 분야 장점을 모아 얼마나 튼튼한 산업 생태계를 만드느냐가 핵심 경쟁력이다. 관리와 통제가 기본인 수직적인 문화보다는 창의와 상상력 주도의 수평적인 문화를 요구받고 있다.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만들어질 때 삼성과 LG가 줄기차게 내세우는 창조적인 기업도 가능하다는 게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위한 해법은 간단하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가진 자가 기득권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 수직적인 조직 문화에서 수혜를 입은 대기업이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제 아무리 뛰어난 중소기업이지만 역시 중소기업이다. 대기업과 출발선이 다르다. 대기업 앞에 서면 한없이 약해지는 게 현실이다. 단순히 도와준다는 마음가짐으로는 전시 행사로 끝날 공산이 크다. 잘못된 문화를 바꾸는 게 핵심이라면 ‘갑·을’이라는 인식부터 버려야 한다. 그래야 “더불어 잘 살자”는 동반성장의 참 뜻을 살릴 수 있다.

 강병준 전자담당 차장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