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달러, 암이 될 수 있다

 27일(현지시각)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3.1%에서 3.3% 사이”로 예상했다. 지난 1월 ‘3.4%에서 3.9% 사이’라던 예측치를 깎아내린 것이다. 올 1분기 미 경제 성장세가 기대했던 수준을 밑돈 게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한 이유였다.

 재정 적자 부담을 마다하지 않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Fed의 오랜 ‘양적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 회복에 탄력(성장률)이 붙지 않았음을 엿보게 했다. 8.8~9%였던 실업률 예상치가 8.4~8.7%로 조금 내려간 게 그나마 위안이지만, 소비를 촉진하고 성장을 자극할 만한 수준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1, 2차로 나누어 이달까지 시중에 푼(양적완화) 2조1500억달러가 이중침체(더블딥)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는 했으되 성장 곡선을 그릴 만한 동력이 되지 못한 것이다.

 Fed는 2008년 12월에 월가 발 금융위기로 위태로웠던 나라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1조7000억달러를 시중에 풀었다. 지난해 말에는 경제 이중침체 조짐이 보이자 매월 750억달러씩 이달까지 4500억달러어치 채권을 사들였다. Fed는 올 5월과 6월에도 각각 750억달러씩 채권을 더 매입해 6000억달러를 채울 계획이다. 모두 2조3000억달러인데, 달러를 찍어도 너무 많이 찍은 것 아닐까. 또 2008년 말 이후로 2년 넘게 연방기금금리를 0~0.25%로 유지한 점을 감안하면 시중에 달러 홍수가 나지는 않을까.

 이날 버냉키가 ‘6월 이후로는 경제에 돈을 더 투입하지 않을 것’으로 암시했으나 당분간 금리 인상과 같은 ‘출구’를 선택할 생각도 없는 터라 달러가 12개 연방준비은행의 금고로 돌아갈 날이 멀다. 세계에서 가장 힘센 중앙은행가인 버냉키가 ‘출구’ 앞에 서지 않자 월가도 웃었다. 이날 다우존스지수가 95.59포인트(0.76%)가 올라 1만2690.96에 닿았다. 나스닥지수도 22.34포인트(0.78%)가 올라 2869.88을 기록했다.

 월가는 웃었으되 세계는 시름을 더했다. 미국의 오랜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달러 홍수가 한국·중국·브라질 등지로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미 세계 경제에 부담을 주기 시작한 것으로 보였다. 중국과 브라질 같은 개발도상국은 “미국의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긴다”고 볼멘소리를 쏟아낼 정도다. “0%대 저금리 상태에서는 양적완화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미국 내 비판도 고개를 들었다. 시중에 달러를 풀어 내수를 늘리고 생산을 자극하며, 미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까지 높이려는 목표가 실현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이 살자고 세계 곳곳에 부담을 떠안기는 꼴이다. 2008년 말 월가 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했듯 달러가 야금야금 위험을 키우는 것 아닐까. 곧 암이 되지 않을까. 더구나 일본은 3·11 대지진 후유증으로 시름하고, 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여러 산유국의 민주화 시위로 국제 기름값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상태다. 이 정도면 새로운 위기가 이미 시작됐을 것 같다. 터지지 않았을 뿐 이미 곪기 시작했다. 한국도!

 이은용 국제담당 차장 e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