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삼성전자·LG전자가 하단냉동고형 냉장고를 미국 시장에서 덤핑판매한 것으로 보인다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우리나라 가전 분야에 대한 미국 업체의 제소는 지난 1986년 컬러TV 브라운관 제소 이후 처음이다. 우리 기업들은 소송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종 판결은 내년 4월께 나온다.
얼마 전에는 애플이 ‘삼성전자가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제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애플은 삼성전자와 스마트폰, 스마트패드에서는 경쟁자이면서, 부품을 많이 구매하는 주요 고객이기도 하다.
최근 글로벌 기업 간 벌어지는 반덤핑제소나 상계관세 지적, 특허 소송 등은 산업 주도권을 잡기 위한 성격이 강하다. 우리나라에 대한 견제가 많아지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가전·정보통신 업계에서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대한 ‘특허괴물’의 소송도 나타나고 있다. 산업 성장에 발맞춰 이런 소송에 대비한 노하우를 갖추는 것도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국제적 제소나 특허 소송에는 무엇보다 냉철하고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초기 대응이 잘못되거나 어설픈 타협은 향후 사태를 키울 수도 있다.
냉장고 조사에서 우리 정부가 업계에 상계가능한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정부가 육성·지원한 다양한 산업 분야로 제소가 확산될 우려가 있다.
신성장동력 및 에너지절약시설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 등에도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번 조사에 대해 업계는 물론 정부 차원의 체계적 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하이닉스는 미국 램버스와 벌였던 수천억원대 특허 소송에서 이겼다. 이 소송은 지난 2000년 시작됐다. 2009년 미 캘리포니아주 연방지방법원에서 하이닉스에 4억달러의 손해배상을 판결하기도 했지만 하이닉스는 이에 항소하면서 최근 고등법원 판결에서 승리했다. 유사한 소송 건에 삼성전자는 지난해 지분투자를 포함해 총 9억달러를 지급하면서 화해로 마무리한 바 있다. 소송과정에서 드는 시간과 비용을 감안한 득실여부를 떠나, 너무 성급히 합의를 진행해 지불하지 않아도 될 돈을 들였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소송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제소자의 주장에 사안별로 심도 있는 분석을 통해 반박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자료 확보가 우선이다. 또 조사자의 질의 답변서 작성이나 실사 대응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초기 대응이 잘못되거나 어설픈 타협은 향후 사태를 키울 수도 있다. 적당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쪽으로만 대응해서도 안 된다. ‘만만하다’는 인상을 주는 일도 회피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술과 제품 생산 능력은 글로벌 톱 수준에 근접했다. 하지만 특허 대응이나 표준화 활동 등에서는 아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담담하게, 하지만 보다 적극적 방법으로 ‘무역장벽’화될 수 있는 글로벌 소송에 대처하는 능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승규 가전유통팀장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