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애플 자본주의

 얼마전 뉴욕타임스는 애플 아이패드2 핵심 경쟁력으로 가격을 들었다. 경쟁 제품과 유사한 사양한 하드웨어(HW)를 탑재하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격 경쟁력을 갖춘 점이다. 실제 시장 현실이 그렇다. ‘디자인’과 ‘혁신’의 아이콘하면 떠올리던 애플은 과거 우리가 알던 모습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애플의 가격 경쟁력 비결은 누구나 수긍할 수 있듯 세가지 정도가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 시장에서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과 막대한 현금 보유고를 동원한 입도선매식 부품 구매 전략, 마지막으로 위탁 생산 전략이다. 거대 마니아 소비자 집단은 어떤 신시장에 진출하든 지배력의 원천이다. 그들을 통해 초기 수년간 시장을 선점한 힘은 일정 기간 막강하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 스마트폰과 스마트패드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600억달러를 넘나들 것으로 추정되는 엄청난 현금 보유고는 시가총액과 더불어 전세계 기업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애플만큼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신규 투자, 배당 등에서 인색한 곳은 드물다. 보유 현금중 소액만 풀어도 핵심 부품의 공급망을 지배하는 일은 누워서 떡 먹는 격이다.

 독자 생산 능력을 갖추지 않는 대신 디자인과 핵심 설계 기능만 보유한 것도 애플의 경쟁력이다. 어쩌면 제조의 실체가 없는, 세계 최고의 제조 기업인 셈이다.

 결론만 보면 애플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다. 시장 지배력은 소비자들을 동원해 선두의 우월적 지위를 누리게 하는 힘이며, 막대한 현금 보유고는 후방 산업군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다. 산업 자본과 금융 자본의 저력을 동시에 갖춘 셈이다. 그래서 혹자는 현대 미국식 자본주의의 또 다른 모습을 애플이 지니고 있다고 평하기도 한다. 이른바 ‘애플 자본주의’다.

 애플은 부품 업계의 로망이 된지 오래다. 수억달러에 달하는 장기 선수금을 쾌척해 전용 부품 라인을 짓게 하고 오랫동안 공급 물량을 보장하는 일은 그동안 애플외엔 찾아보기 드물었다. 하지만 바로 여기서 부품 업계의 딜레마가 시작된다. 지금은 애플이 달콤한 자금력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부품 협력사들을 끌어들이고 있지만, 언제 토사구팽 신세로 내몰지 모르기 때문이다. 애플을 위해 마련한 설비 투자나 혼신의 노력이 과연 애플이 사라질 때 어떤 타격으로 다가올까.

 최소한 거래선이 끊기지 않더라도 1차 협력사가 2차, 3차 지위로 격하된다면 그 여파를 감당할 곳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얼마전 애플의 최대 위탁생산 업체인 폭스콘 중국 청두 공장 화재 사고를 떠올려 보자. 애플과 경쟁하는 삼성·LG나 애플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국내 부품 협력사들이 조심스럽게 그 두 얼굴을 생각해볼 때가 아닐까.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