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IT 서비스 상생 `통쾌한 상상`

 “대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전자정부 수출시장 물을 다 흐려놓고 있습니다. 어떻게 중소업체보다 더 낮게 단가를 써낼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달 초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전자정부 수출전선을 순방하고 돌아온 김남석 행정안전부 제1차관의 말이다.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 국제기구의 원조자금으로 추진되는 개도국의 전자정부 프로젝트에 우리나라 업체들끼리 치고받으면서, 정작 수주는 못하고 프로젝트 단가만 내려놓는 폐해를 낳고 있다는 게 김 차관의 우려였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을 배려할 여유도, 이유도 없는 게 대형 IT서비스 기업들의 현주소다. 당장 그들은 서로 해외시장 수주경쟁에서 밀리면 끝장이다. 이 와중에 중소 벤처업체까지 챙겨가며 ‘아름다운 상생’을 꾸릴 순 없다. 이들도 해외시장에선 협력사가 아닌 경쟁사일 뿐이다. 대형 IT서비스 기업이 앞장서면서 중소 벤처와 ‘그랜드 선단’을 이뤄, 해외 소프트웨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정부의 장밋빛 청사진은 현실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상생(相生)은 말 그대로 서로 살아야 한다. 하지만 지금 청와대와 정치권이 산업계에 요구하는 상생은 한 쪽, 즉 대기업의 일방 희생만을 강요한다. 정권 임기말이 될수록 대기업은 이 같은 요구를 지능적으로 무시할 것이다. 그럴수록 이들과 중소기업 간 ‘기생(寄生) 관계’는 더욱 고착화된다.

 그렇다면 엄혹한 갑을 관계를 인정하고, 지금의 대·중소업체 간 각종 불공정 관행부터 양성화하는 게 차라리 현실적이다. 예컨대 대형 IT서비스 기업의 중소 벤처기업 인수·합병을 장려하는 거다. 단, 헐값에 빼앗지 말고, ‘제값’을 쳐줘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기업을 살 수 있다. 오라클이나 IBM 같은 글로벌 업체들과 해외시장서 경쟁하려면 대형 IT서비스 기업들도 그간 번 돈 좀 써야 한다. 그 돈은 벤처 생태계에 자양이 돼 또 다른 유망 벤처를 탄생시킨다. 이것이 선순환이다.

 IT서비스 업계의 인력 스카우트 문제 역시, 현실이 그렇고, 당사자가 가고 싶다는데, 그렇다면 대놓고 하자. 최근 정부와 업계 일각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이적료’ 제도를 통해 이를 합법화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이는 우리 벤처 생태계가 빼앗긴 고급 인력을, 힘들지만 또다시 길러낼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이 된다.

 변대규 휴맥스 사장은 “중소 벤처는 한국에서 장사하려 하지 마라. 그러면 대기업 그늘 아래서 영원히 못 벗어난다. 이 꼴, 저 꼴 안 보려면 수출로 먹고살라”고 했다.

 대형 SI기업들이 시켜주는 지금의 지옥훈련(?)이 국내 IT벤처의 맷집과 오기를 키우는 원동력이 돼, 머지않아 우리 중소기업들이 해외 시장을 휩쓸고 다니는 통쾌한 상상을 해본다.

 류경동 CIO BIZ팀장 ninan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