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일본 대지진 여파가 우리나라 주력 산업에는 직접 타격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주요 부품소재 기업들이 예상보다 빨리 생산을 정상화한데다 주로 대일 수입에 의존해왔던 국내 업계도 서둘러 구매처 다변화 및 재고 조절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차전지와 자동차 부품 등 일부 업종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적지 않은 반사이익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반도체 웨이퍼 업체 가운데 하나인 일본 신에쓰는 지난 대지진으로 파괴됐던 생산라인을 최근 정상 수준으로 회복시키고 있다. 한때 가동을 멈췄던 후쿠시마현 시라카와 공장을 지난 4월부터 부분 가동한 뒤 이르면 이달 말께부터는 대지진 이전 수준으로 복구한다는 목표다. 오는 3분기 전력 수급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절전 활동이나 나오에쓰·군마 공장의 자체 전력 활용을 통해 생산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또 다른 웨이퍼 업체인 섬코는 요네자와 공장을 정상 가동하는 한편 다른 지역으로 생산을 이전해 이미 지난달부터 지진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국내 반도체 업계에 미친 영향도 거의 없었다는 분석이다. 하이닉스반도체 관계자는 “연초 공급과잉 현상이 빚어졌던데다 재고 조절과 구매처 다변화를 통해 생산에 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면서 “지금까지는 사실상 피해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기업들이 석권했던 프리미엄급 카메라 모듈 센서와 터치스크린용 투명전극(ITO) 필름 등 일부 부품소재 시장에서는 한때 공급부족 현상을 겪기도 했다. 민동욱 엠씨넥스 사장은 “대지진으로 소니의 생산 라인이 파괴되면서 하이엔드급 카메라 모듈용 센서 수급에 문제가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해소됐다”고 설명했다. 이봉우 멜파스 사장도 “ITO 필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일본 닛토덴코가 초기 전력 공급 및 물류에 타격을 입으면서 일시적으로 수급에 어려움이 있었으나 최근에는 정상 수준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 밖에 대일 수입 의존도가 높은 부품소재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생산 차질을 빚지 않은 것은 수요 둔화와 더불어 일본 주요 기업들의 실적이 부진한 이유도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일본 대지진은 2차전지와 자동차 부품 등 일부 업종에서 한국이 일본과 선두 경쟁을 벌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소니가 배터리 생산라인에 피해를 보면서 삼성SDI와 LG화학이 수주와 생산량을 늘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SDI와 LG화학에 전구체·양극활물질을 공급하는 에코프로의 실적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 단적인 예다. 이 회사는 당초 올해 850억원의 매출 목표를 잡았으나 최근 1000억원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얼마 전 일본 시장조사 업체인 테크노시스템리서치도 올 2분기 전 세계 리튬이온 전지 시장에서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1위에 등극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삼성SDI가 일본 산요전기를 누르고 선두에 오른 적은 있지만 국가별 생산량에서 한국이 일본을 따돌리기는 처음이다.
자동차 부품 업종에서는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한국산 부품을 찾는 움직임이 부쩍 늘었다. 닛산이 지난 2월 오는 2013년까지 연간 2조원대 규모의 한국산 부품을 구매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데 이어 최근에는 도요타도 국내 자동차 부품 업체들을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지경부 관계자는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지금까지 관행처럼 자국 내에서 부품 수요를 모두 충당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면서 “비단 자동차 부품 외에도 기계류와 건설장비류 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기업들이 한국에 눈을 돌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서한기자 hseo@etnews.co.kr,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kr,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
윤건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