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35억5000만달러(약 4조원)의 매출로 반도체 분야 16위에 당당히 오른 대만 최대의 팹리스기업인 미디어텍. 그런데 지난해 매출은 36억달러로 제자리걸음을 하더니만 올해는 역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무려 39.3% 감소한 데 이어 4, 5월에도 30% 이상의 매출 감소세를 기록 중이다.
미디어텍이 이렇게 된 요인은 모뎀칩 사업 부진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미디어텍의 주요 매출원이었던 산자이폰(일명 짝퉁폰)을 강력히 단속하고 있는 데다가 중국 팹리스기업들이 미디어텍과 유사한 전략으로 모뎀칩을 판매하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실제로 모뎀칩 사업을 하고 있는 중국의 스프레드트럼의 지난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163% 증가한 1억3700만달러를 기록했다.
최근 중국 팹리스기업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던 대만 팹리스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 팹리스 업체들이 현지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면서 중국 시장을 공략해온 대만 업체들의 매출은 감소세로 반전됐다.
19일 대만반도체협회(TSIA)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대만 팹리스 업체들은 올 1분기 매출이 약 32억달러(936억대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5.8%가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 분기에 비해서도 9.9%가 낮아지면서 계속 하향세를 기록했다.
대만 팹리스기업들의 2분기 실적도 1분기보다 소폭 상승하지만 전년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17.1%가 떨어져 하락폭이 더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다. 3분기와 4분기에 다소 호전되지만 올해 전체 실적은 전년에 비해서 4%가 감소할 전망이다. 지난 2009년 2.9%, 2010년 17.9% 등 상승세를 이어갔던 대만 팹리스 업체들이 지난해 말부터 급격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진의 원인을 중국 팹리스기업들의 약진에서 찾고 있다. 한 전문가는 “대만 팹리스기업들이 주로 공급하던 중국 시장에 현지 팹리스업체들이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물량 감소가 이어지고 있으며 이 같은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시장조사 전문기관인 아이서플라이는 최근 중국 팹리스 시장 규모가 오는 2015년까지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강력한 내수 증가와 수출 확대에 힘입은 것으로 중국 팹리스기업들의 총매출은 지난해 52억달러에서 2015년 107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아이서플라이는 “지난해 휴대폰에 사용되는 반도체 수요가 크게 증가하면서 중국 팹리스 산업이 급성장했다”며 “지난해 중국에서 디자인된 모바일 제품 생산량은 거의 60% 가까이 늘었다”고 말했다. 아직 대만 팹리스기업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중국 팹리스 기업들이 대만 기업들의 가장 강력한 경쟁상대로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고가 시장은 아직 미국·유럽·일본 반도체기업에 밀리고 저가 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경쟁하면서 대만 팹리스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대만 모델을 벤치마킹했던 우리나라 팹리스기업들도 유심히 지켜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