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소프트웨어(SW)산업의 현실은 생각보다 더 비관적이다. 지자체 산업 중 SW산업은 늘 홀대받기 마련이다. 정부 정책 우선순위에서 SW가 밀리고 있는 마당에, 지자체까지 또 무슨 말이냐고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서울의 SW기업과는 달리 지방 SW기업은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로 고민 중이다.
지자체들은 최근 역외 IT기업 유치에 매달리고 있다. 외부 기업이 들어오면 세제 혜택을 준다든지, 새로운 사용 부지를 좋은 조건에 내놓겠다며 인심을 쓴다. 그래도 서울에 있는 기업들은 내려올까 말까 주판알을 튕긴다.
이런 인심 속에 더 골병드는 것은 지역 기업들이다. 외부 기업 유치에 매달리다 보니 자연스레 이들은 지자체 정책 우선순위에서도 밀려난다. 영세한 SW기업들이 대다수인 지방 기업들을 두 번 울리는 셈이다.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대학과 출연연, 기업지원 기관 등의 창업보육센터는 축소되거나 아예 문을 닫기 일쑤다. 이런 SW기업들은 대부분 책상하나와 데스크톱 한대가 전부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전 재산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논리’를 내세운다. 투입대비 효과가 당장 나와야 지원을 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책적 지원 운운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기업으로 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상당수 영세기업들이 SW산업을 정부사업 발주 받아 생존하는 관행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인건비 빼먹는’ 사업인 셈이다.
하지만 선진국은 어떤가. 굳이 마이크로소프트, 애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SW는 최고의 부가가치 산업으로 인식되고 있고, 실제로 산업 내에서의 생태계 구축도 잘돼 있다.
대구를 예로 들어보자. 얼마 전 대구는 ICT파크 부지를 놓고 싸움이 벌어졌다. 10년 전 대구시가 계명대로부터 캠퍼스 일부를 빌려 조성한 ICT파크를 계명대가 계약만료일인 오는 11월 일부 공간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학습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대구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팔짱만 끼고 있다. 해결책도 보이지 않는다.
입주한 SW기업들만 곤란한 처지가 됐다. 학교 주장을 들어주자니 둥지를 버려야 하고, 대구시 입장을 들어주자니 계명대 눈치가 보인다. 일부 기업들은 중간에 끼어 힘들다보니 서울로 본사를 옮기겠다는 얘기까지 흘리고 있다.
사실 기업하기 위해서는 둥지는 기본이다. 기업들이 마음 놓고 R&D와 제품을 생산할 터전이 있어야 한다. 인근에 같은 부류의 기업들이 몰려 있으면 십시일반 도움을 받기도 쉽다. 클러스터 구축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SW기업 간 생각을 공유할 네트워크 구축도 필요하다. ‘없는 사람끼리 뭉친다’고나 할까.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가며 아이디어를 공유할 장(場)이 있어야 한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수천억원씩 매출을 올리는 역외기업 유치가 더 매력적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토종 기업의 역할과는 다르다. 작은 기업이긴 하지만 지역인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 기업하려는 의지가 맞물려야만 진정한 지역의 발전이 이뤄지는 법이다.
‘못난 자식이 고향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비록 작은 기업이지만 지역경제에 기여하고 지역산업을 이끌 효자는 바로 이들 토종기업들이다. 이들이 지역경제의 주체가 돼야 국가 경쟁력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 홀대론’을 지자체가 앞장서 달구는 것은 아닌지 뒤돌아볼 일이다.
정재훈 전국취재팀 부장 jho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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