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뿌리산업과 장인

[데스크라인] 뿌리산업과 장인

 최근 들은 이야기다. 뿌리산업 중 하나인 주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이야기였다. 내용은 이렇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 미국 군용 트럭이 지뢰를 밟았다. 그런데 트럭만 파괴됐을 뿐 미군 운전병은 무사했다. 그 장병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난 것이 너무 고마워 사령관에게 감사편지를 썼다. 지뢰가 터졌는데도 사람이 안 다칠 정도의 튼튼한 트럭을 만든 미국이 자랑스럽다는 것이 요지였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 운전병이 무사한 건 트럭 밑에 들어간 ‘차동기어박스’라는 부품 덕분이었다. 이 부품은 한국 주조업체가 만든 것이었다. 한국 기업이 주조한 트럭 부품이 미군 병사 목숨을 살린 것이다.

 주조는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6대 뿌리산업 중 하나다. 금형을 비롯해 용접·표면처리(도금)·열처리·소성가공 등이 이에 해당한다. 힘들고(Difficult), 위험하고(Dangerous), 지저분한(Dirty) 3D 업종이다. 뿌리산업은 제조업의 근간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해 5월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인천본부를 방문해 “뿌리산업이 제조업 경쟁력을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사례도 있다. 국내 한 전자업체의 TV는 뿌리기술 중 하나인 사출을 특화시켜 세계 시장에서 히트했다. 휴대폰도 뿌리기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휴대폰에 들어가는 주기판 등 제반 부품은 뿌리기술의 결정체나 다름없다. 자동차도 금형 등 뿌리기술에 의해 품질이 달라진다. 누군가 “보이는 하나가 있기까지에는 보이지 않는 아홉이 있다”고 했다. 뿌리산업이 꼭 그 꼴이다. 비록 보이지 않지만 완제품의 품질을 좌우한다. 하지만 뿌리산업의 현재와 미래는 밝지 않다. 20대 근로자가 줄면서 그 자리를 40대와 50대가 채우는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문기술 인력도 감소하고 있다. 2001년 4.2%였던 전문기술자는 2008년 2.8%로 뚝 떨어졌다. 뿌리산업이 흔들리는 것은 3D업종인 탓이 크다. 사람은 누구나 편하고 쉬운 걸 찾는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공돌이’보다 번듯한 대기업에 다니는 사위·며느리 얻고 싶은 게 사람마음이다. 상황이 이런데 젊은이들이 3D 중소기업에 안 간다고 이들만 탓할 수 없다.

 결국 3D 중소기업을 대기업 못지않게 좋은 환경으로 만들어야 한다. 뿌리산업을 ACE(Automatic·Clean·Easy)로 바꾸려는 노력도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뿌리산업의 위험함은 자동화로(Dangerous→Automatic), 더러운 것은 깨끗하게(Dirty→Clean), 힘든 것은 쉽게(Difficult→Easy) 바꾸기 위해 나서고 있다.

 억대 연봉을 받는 ‘장인’들이 쏟아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뿌리산업의 ACE화’와 ‘억대 연봉 장인’들은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문화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을 만들어 취업 미스매치를 해결해주고 학벌 위주 사회에 일격을 가하는 ‘원투 펀치’가 된다.

 방은주 경인취재팀 부장 ejb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