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가 내 카드를 눈치채도록 해서는 안된다. 어떤 카드를 내놓을지 들키는 것도 곤란하다. 반면에 나는 상대 카드를 알아야 한다. 용케 상대 카드를 알아냈다고 해서 끝은 아니다. 실제로 상대가 내놓을 카드인지, 허수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영화 속 카지노 장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카드게임. 테이블 위에 쌓인 현금 다발을 쓸어 담는 승자가 있는가 하면 반대편에서는 뭉크의 ‘절규’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한해 20조원이 넘는 돈이 오가는 이동통신시장에서도 카드게임이 한창이다. 다음달 사상 첫 주파수 경매를 앞두고 800㎒와 1.8㎓ 대역을 놓고 KT와 SK텔레콤의 수싸움이 치열하다. 수싸움은 카드게임만큼 복잡하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주파수가 무엇인지를 판단해야 하고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두 선수가 원하는 것이 같다면 어디까지 입찰가격을 높여야 할지, 갑자기 상대가 발을 빼면 높아진 가격을 어떻게 감당할지 등을 놓고 복잡한 셈이 필요하다.
상대가 다른 카드를 원한다고 상황이 정리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가 그 카드를 갖는 것이 나에게 심각한 마이너스효과를 가져온다면 갖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아야 한다.
애초부터 견제를 포기하고 서로 다른 대역 입찰에 들어가 충돌을 피하는 것도 방법이다. 단 사전에 입을 맞추면 담합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은 ‘우연’이 전제돼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언제부턴가 정작 중요한 중장기 주파수 전략은 후순위로 밀리는 양상이다. 주파수 효용성 분석보다 상대방 수읽기가 더 앞선다.
이통사 주파수 전략이 단기 대응 위주였던 것은 이번뿐이 아니다. 이통사는 지난해 할당 때 800/900㎒를 황금주파수로 꼽았다가 올 초에는 2.1㎓를 새로운 황금주파수로 불렀다. 최근에는 1.8㎓가 다음 황금주파수 후보로 언급된다.
주파수는 그저 가득 쌓아놓는다고 배를 불려주는 요술항아리가 아니다. 주파수라는 희소 자원을 사용하는 혜택을 받은 만큼 소비자에게 이를 어떻게 되돌려줄지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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