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빅 뉴스’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미국 현지시각으로 18일 HP는 PC와 태블릿 사업을 분사하겠다고 밝혔다. HP는 개인용PC 점유율 수위 업체다. 세계 1위 사업을 미련 없이 접은 것이다. 이에 앞서 구글은 모토로라 단말 사업을 인수해 모바일 업계에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글로벌 IT시장에서 한 축을 담당하는 우리나라도 바빠졌다.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요란법석이다.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 흐름에 맞춰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불과 2년 전 애플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했을 때 상황이 재연되는 분위기다. 마치 잘 짜인 각본처럼 IT를 홀대하면서 위기를 부추겼다는 ‘위기론’과 소프트웨어를 천시했다는 ‘자성론’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권도 이를 놓칠 리 없다. 당장 민주당은 우리나라 IT산업이 날개 없이 추락한 데는 현 정권이 ‘뉴IT’라는 미명아래 IT업무를 각개 격파해 다른 부처로 분산시켰기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다소 오버하는 감이 없진 않지만 IT업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오직 정책 부재 때문에 IT가 추락했다고 보는 건 단견이다. 정보통신부와 같은 전담 부서가 만들어지면 IT경쟁력이 올라갈 것이라는 믿음도 환상이다. 물론 과거 정통부가 ‘IT강국 코리아’를 위한 수많은 토대를 닦은 게 사실이다. 지금은 그 때와 또 다른 상황이다. 최고의 혁신기업이라고 일컫는 구글과 애플이 미국 정부 때문에 가능했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다. 만약 지금 방송통신위원회의 대안이 옛 정통부라면 쉽게 수긍하기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IT전담 부처를 산업계에서 부르짖는 배경은 따로 있다. 정책 일관성과 효율성을 확보해야 산업을 키우고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IT분야는 말 그대로 기술이 주도하는 첨단 산업이다. 어느 분야보다 기술 진화 속도가 빠르다. 시장은 빠르게 변하고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상황에서 정책은 항상 뒷북치기 일쑤다.
방법은 정부의 역할 변화다. 시장에 활력을 불어 넣고 플레이어가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면 그만이다. 하나 더 과욕을 부린다면 시장을 만들어 주는 역할 정도면 족하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술을 알고 시장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효율성을 갖춰야 한다.
지금처럼 방통위, 지식경제부, 문화부, 행정안전부 등으로 쪼개져서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수 없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 부재는 정책 효율을 가로막는 딜레마다.
이런 체제라면 10년 뒤에도 공허한 소프트웨어 육성론이 재탕될 수밖에 없다. 결국 ‘포스트 방통위’ 체제는 시장 효율성에 맞게 따라가는 게 정답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