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오세훈. 김쌍수.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IT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뉴스메이커들이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지난 한 주에 모두 CEO자리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영혼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스티브 잡스=애플’이라는 등식도 무리는 아니다. CEO 사임 이후 포착한 사진 속에 비친 스티브 잡스의 야윈 얼굴은 그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애플로서는 스티브 잡스의 퇴임으로 인한 빈자리를 당분간 메우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오세훈 서울 시장은 무상급식 문제로 진행된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었다. 결국 투표율이 33.3%를 넘지 못해 투표함을 열어보지도 못했고 시장자리에서 물러났다.
여기에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도 지난주 돌연 사의를 표명했고 29일 퇴임한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한전 사장을 지낸 3년간을 되돌아보고 아쉬웠던 점, 서운하게 생각한 일들을 쏟아냈다.
김 사장은 LG전자 부회장 시절 혁신을 통해 LG전자의 백색가전을 글로벌 톱 수준으로 끌어올린 일로 유명하다. 수십억원의 연봉을 받던 그가 연봉 1억원 남짓(성과급 등을 포함하면 2억원 수준)에 불과한 공기업 CEO가 됐을 때 고개를 갸우뚱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의 미션은 거대 공기업의 혁신이었다. LG전자 시절부터 혁신 전문가로 통한 김 사장의 취임일성은 “혁신활동을 통해 위대한 기업(Great Company)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철밥통이나 다름없던 한전을 혁신하기 시작했다. LG전자 시절의 신경영기법인 TDR(Tear-Down & Redesign)과 6시그마를 전격 도입했다.
김 사장은 한전 내부 혁신과 함께 만성 적자를 흑자로 전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었다. 자회사로 분리된 발전사들을 다시 통합해 효율화한다는 내용의 ‘원 캡코(One KEPCO)’ 전략과 전기요금 인상이 핵심이다.
발전사 재통합 문제는 작년 8월 정부의 전력산업구조개편안이 확정되면서 무산됐다. 연료비 연동제와 가격 현실화를 주장해 온 전기요금은 최근 평균 4.9%를 인상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처절한 경영혁신과 긴축경영으로 지난 3년간 4조5000억원가량의 원가를 절감했지만 한전 사장으로 재직한 3년 내리 적자를 냈다. 3년 누적 적자액은 6조7000억원에 달했다. 14명의 소액주주들로부터 2조8000억원대의 소송을 당하자 김 사장의 심경에 커다란 변화가 일었고 임기를 며칠 앞두고 사의를 표시하기에 이르렀다.
김 사장은 지난 3년간 정말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소송을 당해 매우 아쉽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심지어 자신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사장’이라 표현했다. 소액주주와의 소송에서 지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한전 사태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혁신을 강조한 참여정부 때도 그랬다. 초기에는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지만 거기까지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혁신피로감이 몰아치면서 정권 교체로 막을 내렸다. 한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뛰어난 혁신가라 해도 120년 이상 된 조직을 3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그것도 정부와 미묘한 줄다리기를 하면서 바꿔놓기는 역부족이었다. 김 사장 같은 혁신 CEO가 세 번 정도 연이어 경영한다면 모를 일이다.
29일 이임식을 끝으로 한전을 떠나는 김 사장의 거취가 벌써부터 관심거리다. 친정 복귀설도 있고 제주도 같은 한적한 시골에 자리 잡고 농사를 지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디서 무엇을 하든 김 사장한테는 ‘혁신 전도사’라는 수식어가 함께할 것이다. 또 다른 곳에서 성공적인 혁신가로 명예 회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주문정·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