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정의 그린로드] 정전 사태, 두 번 다시 없어야

 “형편없는 후진국 수준이다. 당신들은 잘 먹고, 잘 자고 전기수요가 올라가니까 끊어버리겠다고 이런 생각으로 일하는 것 아니냐. 내가 분통이 터지는데 실제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속이 상하겠느냐.”

 사상 초유의 전국적인 정전 사태가 일어난 다음날인 16일 한국전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발언 수위는 질책 수준을 넘어섰다. 책임 소재도 분명히 따지겠다고 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는 물론이고 한국전력이나 전력거래소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을 것 같다.

낮은 정전률과 전기 품질 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해 온 대한민국이다. 이런 자부심은 15일 전국적인 정전 사태로 한 순간에 무너졌다.

 지경부와 한전·전력거래소는 올해 최대전력 사용량을 7477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7897만㎾ 수준의 전력공급 능력을 유지해왔다. 15일 전국을 정전 대란으로 치닫게 한 전력 사용량은 불과 6726만㎾였다. 정부가 올해 최대전력 사용량으로 예상한 7477만㎾에는 한참 못 미친다. 그럼에도 사단이 벌어진 것은 지난 9일로 비상수급상황이 종료되면서 발전소 계획정비에 들어갔고 당시 최대전력 사용량을 6400㎾정도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예년처럼만 진행됐더라면 문제는 없었겠지만, 늦여름 이상 고온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말았다.

 정전 사태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게 한다. ‘전력수요 예측만 제대로 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고 과거사가 됐다.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정전대란으로 드러난 문제점들을 개선해 두 번 다시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세계에서 정전률과 전력손실률이 가장 낮은 점은 분명 자랑스러워 할 일이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이 아닌 알맹이도 세계 1위가 돼야 한다. 물리적인 인프라 완성도는 물론이고 인프라를 모니터링하고 조치를 취하는 담당자의 정신무장이 필요한 대목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조기 구현 목소리도 높다. 최종 소비자단에서부터 전력거래소 중앙급전소에 이르기까지 전력수급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해 전력부하를 분산해 안정화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 국지적인 문제를 해결할 소형열병합 발전이나 연료전지·태양광·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원으로 구성된 분산형 전원도 적극 활용할 만하다.

 전력망 고도화와 함께 전력수급이 불안할 때 적용하는 비상조치 매뉴얼도 현실에 맞게 개선해야 한다. 순환 정전을 실시할 당시 경찰서·병원·시청·소방서 등 국가기간시설도 일부 전기가 끊겼다. 우리나라 선로 상황 상 특정 시설만 선별적으로 전원을 차단할 수 없기 때문에 정전이 되서는 안 되는 기간시설도 전기가 끊어진다. 전기 차단 순서를 정해놓은 매뉴얼 자체가 무용지물인 셈이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한국전력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 움직임이 나오기 시작했다. 피해보상과 책임소재를 둘러싼 공방도 불 보듯 뻔하다.

 이번 사태로 책임을 지는 사람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벌어진 상황을 수습한 이후에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전국적인 정전 사태로 우리는 아픈 교훈을 얻었다. 잘못된 전력수요 예측과 방심이 부른 수업료 치고는 가혹한 수준이다. 자칫 대한민국을 회복 불능의 ‘블랙아웃(black out)’ 상황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던 점을 감안하면 한편으론 다행스럽기도 하다. 두 번 실수는 용납이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문정·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