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기관 방송통신위원회와 피규제 대상인 통신사업자 간에 이상 기류가 흐른다.
상반기 통신요금 인하부터 시작된 방통위와 통신 3사 간 엇갈린 행보가 KT 2G서비스 종료 승인, 이통사 자회사 재판매사업(MVNO) 참여 제한, SK텔레콤 LTE 요금인가 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방통위가 사업자에 휘둘리지 않는 규제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세우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통신산업 진흥 측면에서 지나친 시각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25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방통위가 최근 통신사업자 주요 사업 현안에 대해 사업자보다는 이용자 이익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사업 계획이 연기되거나 변경되는 상황이 잇따르고 있다.
방통위는 통신요금 인하 논란 과정에서 사업자가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기본료 인하안을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 3사 모두에 적용했다. KT가 추진 중인 2G서비스 종료 계획에도 안팎의 예상을 깨고 6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승인을 보류했다.
MVNO사업과 관련해서도 서비스 상용화를 불과 1주일여 앞둔 상황에서 이통사 자회사 시장 진입을 전격적으로 제한하는가 하면 최근에는 SK텔레콤의 4G LTE 스마트폰요금을 인가하지 않고 있다.
통신 3사에 대한 방통위의 불편한 심기는 지난 19일 열린 단말기 보조금 과징금 관련 회의에서도 감지됐다.
회의에 참석한 최시중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은 통신 3사가 각 사의 위치와 역할에 걸맞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일제히 통박했다. 1위 사업자는 1위답지 않은 비즈니스 행태를, 3위 사업자는 3위로서 분발하는 모습이 부족하다는 질타가 이어졌다.
이들 정책 결정 모두 통신 3사의 원활한 사업 추진과 서비스 고도화보다는 이용자 이익의 가치에 주안점을 둔 결과다. 사업 차질을 우려하는 통신사의 불평불만에 끌려다니기보다는 철저한 검증과 분석을 통해 좀 늦더라도 이용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둔 정책 결정을 내리겠다는 뜻이다.
실제로 최근 SK텔레콤 LTE 요금인가 과정에서도 방통위는 “사업자 일정이 정해졌다고 방통위가 그에 맞춰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충분한 검토 과정을 밟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견지했다.
한편에선 방통위의 최근 정책 결정 방향이 정치권과 소비자 여론을 중시한 나머지 산업 진흥을 도외시하고 현장의 애로사항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KT 2G 종료 검토 과정처럼 뚜렷한 가이드라인 없이 정책 결정이 지연되면 사업자는 서비스 고도화와 신규 투자라는 또 다른 방통위의 주문은 따르기 힘들다.
위원회 제도 특성상 산업계 이해와 이용자 이익이 맞서는 안건은 각 상임위원 의견이 모이기 어려워 정책 결정이 지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한 가지 사안을 놓고 사무국 담당자는 물론이고 각 상임위원에 일일이 설명하러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며 “이용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부처의 특성상 시장과 소비자를 함께 바라보는 정책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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