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 `여의도`를 점령하라?

 세계에 ‘반(反)자본주의 유령’이 떠돈다.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3주 만에 로스앤젤레스를 비롯한 미국 전역으로 번졌다. 15일엔 캐나다 토론토와 호주 시드니, 멜버른을 비롯해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집트, 칠레, 예멘 등의 주요 도시에서도 ‘○○○을 점령하라’ 시위가 벌어진다. 이름 하여 ‘세계 변화의 날’이다.

 시위대 요구는 나라마다 다르나, 자본주의 탐욕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는 동일하다. 극소수가 부를 독점하고 대다수는 삶이 고달픈 현실에 대한 분노다. 일자리를 잃었다. 주택담보대출 상환 비용과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다. 거리로 내몰릴 판이다. 금융위기로 비롯했다. 정작 장본인인 금융사는 공적 자금 지원을 받으면서 떵떵거린다. 여전히 ‘이자놀이’로 부실을 서민에게 떠넘긴다. 부실 금융사와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는 천문학적인 퇴직금을 챙긴다. 레오 아포테커 HP 전 CEO는 1320만달러(약 155억원)를 받았다. 고작 11개월간 구조조정만 한 대가다. 그 사이 이 회사 주가는 47%나 떨어졌다.

 자본주의 탐욕은 새삼스럽지 않다. 왜 갑자기 반대 시위가 들끓을까. 여러 불만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고용 불안이 가장 큰 이유다.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업을 마친 젊은이가 일할 곳을 찾지 못한다. 이들이 주도한 시위에 직장인과 주부까지 동참한다. 일자리 없는 것이나 잃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미국 한 도시의 시위가 급속도로 세계로 번진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유튜브 동영상 덕분이다. ‘아랍의 봄’ 때의 폭발력을 다시 확인했다. 아랍권 시위가 민주 서구사회로 옮겨가면서 슬로건이 ‘반독재’에서 ‘반자본주의’로 바뀌었을 뿐이다.

 시위대가 곧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를 요구하는가. 아니다. 주장의 핵심은 경제 불평등 해소다. 자본주의가 러시아, 중국까지 포용하면서 발전한 힘은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믿음과 희망이다. 깨졌다. 아무리 애를 써도 보상은커녕 생존권마저 위태롭다. 금융사를 비롯한 상위 1%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일삼는다. 좌절한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의 모럴해저드는 신자유주의 산물이다. 초기 자본주의 폐해를 수정자본주의가 극복했듯이 신자유주의를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른바 ‘따뜻한 자본주의’ ‘자본주의 4.0’이다. 우리 정치권과 재계도 이를 제대로 읽지 않으면 더 큰 봉변을 당한다.

 불행하게도 조짐이 안 좋다. 불만이 중장년층까지 번졌다. 거의 유일한 노후대책인 집값이 떨어졌다. 전세보증금은 치솟았다. 재산 좀 늘려보겠다고 투자한 주식은 휴지가 될 판이다. 부실 저축은행 예금자 분노는 개미투자자보다 훨씬 세다. 물가가 급등하니 주부까지 성을 낸다.

 정치 불신은 한계선을 넘었다. 거대 야당이 고작 한 달 전 정치판에 뛰어든 이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내줄 정도다. 스마트폰을 쥔 많은 이가 쉬는 날인데도 야권 단일후보를 뽑는 장충동체육관을 찾았다. 정부와 여당이 기존 미디어를 통해 “경제 끄떡없다” “복지 미래”를 외친다. 많은 이들은 흘려듣는다. 인터넷 라디오 ‘나꼼수’는 찾아듣는다.

 미국 시위대가 월가를 점령한 지난 주말, 반값등록금 시위대가 광화문을 점령했다. ‘명박산성’에 막힌 광화문 시위대가 언제 여의도를 향할지 모른다. 국회와 금융기관이 있는 곳이다. 성난 투자자들이 있는 곳이다. 정치와 경제 1번지에서 시위라니 악몽이다. 경제 위기가 실물경제로 막 번지는 상황이다. 혼란을 걷잡을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 금융사, 대기업 모두 정신을 차려야 한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어제 대표직 사퇴 뜻을 밝혔다. 이처럼 통렬한 자기반성만이 ‘여의도 점령’ 시위를 막는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