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제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올려놓을 수 있는 최종 귀착점은 소재 산업이다. 이미 산업 경쟁력 원천은 완제품·부품 산업에서 소재로 옮아가는 추세. 한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여전히 일본·미국·유럽 등 해외 선진국 의존도가 컸던 분야도 소재다. 그래서 소재 산업은 우리가 차지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고지이자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염원이기도 했다.
오는 2018년까지 세계 시장을 호령할 차세대 소재 10개를 만들어보자며 의욕적으로 출발한 ‘WPM(World Premier Materials)’ 사업이 지난 9월 30일로 출범 1주년을 맞았다. WPM 사업은 소재 산업 세계 일류화를 견인할 기폭제로 출발부터 범국가적인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전자신문은 연속 기획을 통해 WPM 사업이 소재 산업 일류화 초석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의미를 조명해보고 10개 사업단별 성과와 과제, 향후 추진방향을 진단해본다.
지난 2010년 2월 19일(금) 천안 상록회관. WPM 기획위원과 각계 전문가 60여명이 모였다. 이번에는 반드시 결론내기 위해 주말을 포함해 2박 3일간의 마라톤 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당시 WPM 기획위원장이었던 백성기 전 포스텍 총장은 작심했다. 회의 내용이 부실하면 다시 준비해 오기를 거듭 요구했고 결국 이틀간 새벽까지 회의를 진행했다. 처음 제안된 1200여개 후보 소재 기술을 거르고 걸러 간신히 20개 후보 과제를 도출했다. WPM 정책이 수립된 뒤 사실상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이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산업기술평가관리원 정중채 팀장은 “9년 내에 세계 시장에서 승부를 걸 수 있는 기술을 골라내는 과정 자체가 너무나 힘들었다”면서 “아마 그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면 WPM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기억했다.
WPM 사업 탄생 과정은 실제 그랬다. 미래 국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중차대한 프로젝트였던 탓에 과제 선정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기획위원회 차원을 넘어 한국공학한림원과 CTO클럽, 나아가 170여명의 재외 한인과학자 자문을 통해 비로소 10대 차세대 소재를 선발할 수 있었다. 친환경 스마트 표면처리 강판, 수송기기용 초경량 마그네슘 소재, 에너지 절감·변환용 나노복합소재, 다기능성 고분자 멤브레인 소재,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기판 소재, 고에너지 2차전지용 전극 소재, 바이오 메디컬 소재, 초고순도 실리콘카바이드(SiC) 소재, 발광다이오드(LED)용 사파이어 단결정 소재, 탄소저감형 케톤계 프리미엄 섬유 등이다. 이렇게 시작된 WPM 사업에는 총 366개의 산학연이 신청하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고, 마침내 지난해 8월 10개 사업단을 최종 선정하며 1단계 사업의 본격 시동을 걸었다.
WPM 사업은 10대 핵심 기술을 성공적으로 개발해 오는 2018년 기술별로 세계 시장에서 10억달러 이상 벌어들이고, 시장점유율 30% 이상 차지하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다.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고유의 소재 브랜드를 확보하고 녹색 신성장 동력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이맘때까지 WPM 사업이 유발하는 신규 매출 효과만 약 40조원, 신규 고용 창출 효과는 3만20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WPM 프로젝트는 10대 소재 기술별로 기업이 주도하는 사업단을 구성하고 국내외 연구개발(R&D) 자원을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을 원칙으로 삼았다. 사업단별로 다소 시점은 차이가 나지만 1단계로 내년까지는 핵심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오는 2015년까지 2단계과정에는 응용 기술 개발에 착수한다. 오는 2018년까지 3단계 사업에서는 기업들이 실제 양산 투자에 나서면서 시장을 주도한다는 단계적 전략이다. 정부는 과제별로 연간 100억원, 9년간 총 1조원 가까운 R&D 자금을 투입한다.
WPM 사업은 중소·중견기업과 대학·연구소 등이 포괄적으로 참여해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동반성장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의미가 더 각별하다. 현재 WPM 사업단에서 중소기업·대학·연구소는 총 196개로 전체의 78%에 달한다. 참여 대기업 56개 가운데 30곳은 개발된 소재를 검증해줄 수 있는 수요 기업들이다. 9년간 정부 출연금도 총 9450억원 중 대기업에 할애되는 몫은 36.5%에 불과하다. 중소·중견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이보다 많은 38.7%에 이른다. WPM 사업이 등장하기전 정부 국책 과제들은 소규모 일회성 사업에 그쳤고, 그것도 기업보다는 학계·연구소가 주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한 덕분에 WPM 사업은 벌써부터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포스코가 주관하는 스마트강판 소재 사업단은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인 분당 100m(두께 1㎛) 진공 코팅 장비를 개발해냈다. LG화학 나노카본 복합소재 사업단은 강도·전도성 개선용 맞춤형 나노카본 하이브리드 설계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 대비 90%까지 끌어올렸다. 코오롱 지능형 멤브레인 소재 사업단은 수처리용 고분자량 친수성 소재 시험 합성에 성공하고, 이를 이용한 복합 중공사막을 개발했다. 나머지 7개 사업단도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른 기술 개발 진척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성과로 지난 9월 WPM 사업은 기획재정부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여느 국책과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성적을 얻었다. 기술성과 정책성, 경제성을 감안한 종합 평가에서 계층분석법(AHP) 0.814점을 얻어 통과 기준인 0.5를 크게 웃돌았다. 경제성 측면에서는 비용편익분석(B/C) 값이 0.947로 만점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
지난 4월부터 2차년도 과제에 들어간 WPM 프로젝트는 사업단 간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R&D 투자의 효율을 더욱 개선할 계획이다. 2차년도 예산 중 950억원을 사업단별로 차등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1차년도에 다소 미진했던 글로벌 R&D, 즉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강화하기로 했다. 중소기업 육성에 더욱 힘을 싣는 것도 주목할만하다. 중소기업 소재 전담팀을 운영하고 중소기업이 주도적으로 개발한 특허권 등 지식 재산을 소유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할 예정이다.
<표1. WPM 10대 사업단 기대효과(~2018)>
<표2. WPM 사업단 선정 현황, 단위 개>
<표3. WPM 사업단 연도별 사업화 투자 계획(단위 : 억원)>
<특별취재팀> 서동규차장(팀장) dkseo@etnews.co.kr, 서한·양종석·윤건일·문보경·이형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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