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이어 메모리 반도체 분야 특허를 둘러싼 전운이 감돌고 있다. 최근 반도체 경기 악화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해외 반도체 업체들이 자사 보유 특허를 활용한 라이선스 사업의 비중을 높이고 있다. 이들은 메모리 시장 선두권에 있는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를 정조준하고 있다.
3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3분기 447억엔의 적자를 기록한 일본 엘피다는 IR자료에서 공세적으로 특허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으로 떨어진 수익을 특허 라이선스 사업으로 보충하겠다는 뜻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27일 발표한 6가지 D램 불황 극복 방안 중에 하나로 자사 보유 특허를 활용해 수입을 증가시키는 항목을 추가했다.
엘피다는 실제로 지난 9월 대만 최대 메모리 기업인 난야를 대상으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했다.
미국 마이크론과 일본 르네사스, 독일 키몬다 등 메모리 반도체 업체도 특허권 관리기업(NPE)을 전면에 내세워 특허 라이선스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마이크론은 지난 2009년 자사 4000여 특허를 NPE 업체인 RRR(라운드 록 리서치)에 매각했다. NEC·히타치·미쓰비시 3사 반도체사업을 통합한 르네사스는 지난해 NPE 전문업체인 아카시아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자사 D램 등 반도체 특허 4만여건에 대한 라이선스 사업에 나섰다.
아예 NPE 자회사를 설립해 사업 모델을 전환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 2009년 반도체 불황 때 파산한 독일 키몬다는 생산 설비를 매각한 후 키몬다 라이선싱을 설립, D램 제조업체에서 NPE로 변신했다.
NPE 업체들로 특허권이 이관되면서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 RRR는 지난해 대만 HTC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애플·삼성전자 등으로부터 특허 라이선스를 받았다. 아카시아는 지난해 하이닉스와 메모리 관련 특허소송에서 합의하고 지난 6월에는 대만 난야에 기술 라이선스를 판매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반도체 경기 하락으로 이 같은 라이선스 사업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특히, 반도체 특허 사업으로 재미를 본 NPE 업체들이 사업이 악화된 대만 D램 업체로부터 특허권을 매집해 특허 자산을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반도체 생산이나 기술 개발을 전혀 하지 않고 이전에 개발한 기술 특허만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제2의 키몬다’가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찬수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반도체 NPE 업체들은 불경기로 어려움을 겪는 중견 반도체 기업로부터 특허권을 확보해 특허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시장 경기에 부침이 큰 반도체 제조보다는 리스크가 적은 특허 라이선스 사업으로 아예 전환하는 사례가 계속 늘어날 여지가 많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NPE 업체들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 시장 선두권 업체를 집중 공략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된다. 박 수석연구원은 “NPE들은 소송을 통한 수익 확보가 목표기 때문에 경영 상황이 열악한 중견기업보다는 이른바 ‘돈 잘 버는’ 기업을 공략하는 것이 속성”이라며 “국내 기업은 특허 공세에 대비가 잘돼 있지만 특허 포트폴리오 확대 등의 노력이 계속 요구된다”고 말했다.
서동규기자 dkse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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