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얻어맞았다. 이번에도 강펀치다. 정치권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기부 선언에 또 한 번 휘청거린다. 태연해 하지만 복잡한 속내를 감출 수 없다. 여당은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 몰아붙이고 싶지만 역풍이 두렵다. 선행을 치켜세운 야당도 그의 야권 대통합 이탈을 걱정한다.
안 원장은 1500억원 상당의 안철수연구소 주식을 사회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웬만한 부자도 갖기 힘든 재산이다. 이를 선뜻 내놓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로또’만 맞으면 반을 기부하겠다고 다짐해도 막상 당첨되면 생각을 고쳐먹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그는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일을 실행에 옮겼을 뿐”이라고 말했다. 진의를 믿는다. 별다른 근거가 있어 그런 게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비참한 생각이 들지 않을까. 정몽준 의원과 범현대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최근 수천억원의 사재를 내놓은 뜻도 마찬가지로 순수하다고 믿는다.
중요한 것은 번 돈을 아낌없이 내놓는 부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이들에게 별 것 아닌 것으로 태클을 걸 이유가 없다. “미국의 ‘기부왕’ 척 피니처럼 은밀하면서도 꾸준히 전 재산을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따지는 것도 우습다. 기부 문화가 확산되면 우리나라에도 머잖아 ‘척 피니’가 등장하지 않겠는가.
안 원장 행보를 두고 정치권 해석이 분분하다. 요약하면 내년 대권 레이스 시동과 이를 위한 재산문제 정리다. 전혀 설득력 없는 분석은 아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정치권이 안 원장의 행보를 분석할 줄 알아도 예측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나는 꼼수다’ 진행자 김어준씨가 저서 ‘닥치고 정치’에서 잘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현 정치권과 대중의 괴리는 ‘다른 언어 코드’의 문제다. 정치란 게 결국 대중의 감성을 읽어 소통함으로써 그 마음을 얻는 것이다. 여야, 보수진보 할 것 없이 현 정치권은 대중의 언어 코드를 모른다. 그러니 아무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동원해봤자 소통이 잘 안 된다. 평신도 시대임에도 마치 사제처럼 강압적이니 따를 신자도 없다. 어디 정치권뿐인가. 정책 당국도 마찬가지다.
‘갈라파고스’라고 세상과 단절된 섬이 있다. 이 섬이 청와대와 여의도, 광화문과 과천 곳곳에 듬성듬성 있다. 맞다. 정보통신기술(ICT) 갈라파고스도 이들로부터 갈라져 나오지 않았을까. 바깥세상 언어를 모르니 아무리 들어도 이해할 수 없다. 안 듣는 게 아니라 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안 원장을 우리나라 벤처기업가의 모범으로 본다. 실제론 그렇지 않다. 생존 경쟁 속에 하루하루 치열하게 사는 벤처기업가가 지금도 현장에 수두룩하다. 안 원장은 그 축에 끼지도 못한다. 정치인 안철수라면 다르다. 대중과 소통하는 법을 안다. 고수다. 나눔의 뜻을 밝힌 이메일에 그대로 묻어난다.
삶이 무너진 중산층과 좌절, 실의에 빠진 젊은 세대를 적시했다. 기부금을 저소득층 자녀 교육에 썼으면 한다고 밝혔다.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들을 정확하게 건드렸다. 기자회견이 아닌 편지 형식을 택했다. 작은 일을 떠들썩하게 자랑한 이들을 부끄럽게 한다. 정치권은 이를 정치적 꼼수로 보지만 왜 이런 좋은 꼼수를 그들이 배우지 않는지 이상하다.
정치권이 과연 안 원장의 다음 행보를 읽을 수 있을까. 지금 봐선 가능성이 희박하다. 만약 읽을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확실한 것은 그때 비로소 정치권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맞받아치지 못할 지라도 안 원장의 다음 강펀치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