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시장과 기술의 접점

[데스크라인] 시장과 기술의 접점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IT는 어렵다. 머릿속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한 아이들보다 머리가 굳을 대로 굳은 어른들에게 IT는 더 어렵다.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빌려주면 불과 몇 분 만에 1년 넘게 사용한 아버지보다 더 잘 활용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목격한다. 검증된 사용설명서를 참조하면서 IT기기를 조작하는 것에 익숙한 어른과 닥치는 대로 눌러보면서 직관적으로 숙지해 가는 아이의 행동방식 차이가 아닐까 싶다.

 1970~1980년대 산업화시대를 풍미한 전통산업체들은 그들 나름의 탄탄한 노하우와 경험을 바탕으로 검증된 매뉴얼에 충실하며 성장해왔다. 그들에게 IT는 젊은 벤처기업과 달리 활용하기 버거운 존재다. 특히 회사를 책임지는 CEO로서는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IT화를 따라가야 한다는 불안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 사이에서 갈등에 빠진다.

 모바일시대로 넘어 오면서 전통산업 CEO들이 체감하는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시간 때우기에나 쓰는 스마트폰으로 수십 년 정착된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는 기업이 있다고 하니 어이가 없으면서도 궁금하다. 직원들이 시대변화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며 보고를 올리지만, 그렇게 바꿔서 성공한 사례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모바일IT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은 B2C 영역에 머물고 있다. 개개인의 모바일 활용은 부담이 적지만, 기업 업무 시스템의 변화는 무거운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최고결정권자인 CEO만이 결단을 내릴 수 있지만 그들은 레퍼런스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모바일 B2B시장 창출이 늦어지는 이유다.

 약 10년 전 정부는 전통산업의 IT화를 통해 산업생산성을 높인다는 정책 목표 아래, 업종별로 B2B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각 업종별로 프로세스 개선 및 기업 간 협업 성공사례를 발굴 홍보해, ‘보이는 것만 믿는’ IT 수요자들을 설득해 시장을 형성하겠다는 취지도 담겨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IT와 변화가 느린 전통산업체간 매파를 정부가 자처한 것이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IT공급자와 IT수요자간 정보공유의 장을 만든 것이다. 기술과 시장의 접점을 형성해 IT를 모르는 수요자와 너무 앞서가는 공급자간 간극을 줄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탄생했고, 그 모델은 IT업계에 새로운 사업 기회를 제공하거나 기업체 업무 프로세스에 내재화됐다. 이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서비스 모델’은 ‘보이는 서비스 모델’이 됐고, 누구나 도입해야 하는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으며 대한민국 산업의 IT 지수를 크게 높였다.

 이젠 모바일이다. 모바일 B2B시장의 잠재력과 부가가치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정작 모바일IT 공급업체들은 시장에 내놓을 서비스모델 기근에 허덕이고 있다. 또 수요업체들은 본인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조차 모른다. 정부가 내년부터 추진하는 업종별 모바일 B2B사업은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것으로, 수요와 공급의 접점을 만들어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시도다. 대한민국 산업을 업종별로 관장하는 지식경제부가 간과해서는 안 될 역할이기도 하다.

 심규호 전자산업부장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