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연말이다. 2012년 첫 출근이 엊그제 같은데 연말이라니 정말 시간은 쏜살처럼 빠르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슨 일을 했고 무엇을 남겼을까. 돌이켜보면 올해처럼 ICT산업에 변화가 많았던 때도 없었다.
우선 떠오르는 게 연초 많은 기대 속에 시작했던 공공시장에서의 대기업 참여 제한제도 강화다. 이미 40억원 미만 공공 정보화사업에 대기업이 참여할 수 없었으나, 그 금액을 80억원으로 대폭 확대한 것이다. 시장에 꽤 큰 반향을 일으키는 제도였음에도 참여자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성공적으로 정착된 것 같다. 문자 그대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고나 할까.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공공을 제외한 다른 시장에서 전문성을 발휘하고, 전문·중견기업은 공공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각자 특화된 분야별로 전문성을 키워가고 있다.
어디 그 뿐이랴. 그동안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던 SW인력 부족과 불균형 문제도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중소기업도 더 이상 인력이 부족해 일하기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2011년 하반기부터 몇몇 대기업이 자체적으로 SW인력 양성 계획을 발표하더니, 지금은 너도나도 인력 양성에 나섰다. 심지어는 자신이 키워 놓은 전문 인재를 독식하려 들지 않고, 비용 때문에 전문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에 양보한다는 미담까지 들려온다. 파트너십이 필요한 ICT산업 특성상 이처럼 대·중소기업이 고루 전문성을 높이고 협력해야 더 큰 결실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실천한 것은 무엇보다도 큰 성과다.
전문성 향상의 성과일까. SW 수출도 드디어 본궤도에 올랐다. 그동안 세계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도 채 안될 만큼 미미하던 우리 SW가 해외에서 호평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 날을 얼마나 학수고대했던가. 정말 너무 기뻐서 지나가는 사람과 껴안고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SW 제값주기는 또 어떠한가.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무형 자산인 SW 가치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형성됐다. 공공은 물론 민간도 무리하게 값을 깎으려 들지 않으며, 적절한 이윤이 보장되는 선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파트너십을 이어간다. 기업이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서로 전문성을 높이고 시장을 키워가는 아름다운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사람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그간 개발자에게 족쇄처럼 따라다니던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자조섞인 용어도 추억 속의 단어가 됐다. 청년창업이 늘고 있음은 물론이고 몰려드는 SW 관련학과 지원자 때문에 대학은 즐거운 몸살을 앓는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되면 관련학과 정원이 늘어나는 것도 시간문제리라.’
다소 생뚱맞아 보이지만 연말에나 쓸 보고서를 연초에 쓰고 보니 그 진위야 어찌됐든 기분이 좋아진다. 한 사람의 소망이 아닌 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이기에 더더욱 그러하리라. 따지고 보면 전혀 이루지 못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새해 초 발표된 각 기업 신년사에는 공통된 한 가지 요소가 있는데,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찾자는 말이 그것이다. 거창하고 매우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지만 생각을 바꿔보자.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이라든가 경주 최 부잣집에 힌트가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만 잘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함께 해야 더 오래 가고 더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보여주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한 세대를 영위하기도 힘들다는 부를 300년간이나 지속할 수 있었고, 르네상스라는 문화의 꽃을 피우는 젖줄이 되기도 했다.
가상이긴 하지만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에서 동반성장을 추구한다면 그 결실은 생각보다 넓고 큰 열매를 맺으리라 확신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2012년에는 동반성장을 통해 우리 산업이 지속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경원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 kwchung@nip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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