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청풍(淸風)

[ET칼럼] 청풍(淸風)

한때 ‘청풍초(淸風草)’가 이야깃거리였다. 제24회 행정고등고시 합격자 189명이 “공직 사회에 맑은 바람(淸風)을 일으키자”며 ‘청풍초’ 모임을 시작했다. 고시에 합격한 해가 1980년이니 31년이나 됐다.

 동기 모임이 유다른 관가에서 새삼 ‘청풍초’에 눈길이 쏠린 것은 최근 위용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임태희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정점으로 장차관급 정무직 진출이 부쩍 활발했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임종룡 국무총리실장, 신제윤 기획재정부 제1차관, 서필언·이삼걸 행정안전부 제1·2차관, 육동한 국무총리실 국무차장, 이현동 국세청장, 김희국 국토해양부 제2차관, 최규연 조달청장, 김화동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상임위원, 우기종 통계청장 등이다. 1981년 제23회 사범시험에도 합격한 정선태 법제처장과 지난달 물러난 김정관 지식경제부 제2차관을 감안하면 행정 요직에 그야말로 고루 ‘청풍’이 닿았다.

 바람은 더 넓게 퍼졌다. 정두언 의원(한나라당)과 최철국 전 의원(민주당), 송하진 전주시장, 여인국 과천시장, 남궁민 한국산업기술시험원장, 윤대수 한국원자력연구원 제16대 감사, 박종용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초대 상임감사, 성남기 국민체육진흥공단 상무이사 등이다. 국무조정실에서 잔뼈가 굵은 뒤 웅진홀딩스를 거친 임종순 한국컨설팅산업협회장, 촉망받던 전 재정경제부 관료였던 주우식 삼성증권 부사장, 제19대 총선 인천 남동갑에 도전하는 박남춘 전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도 손가락에 꼽힐 ‘청풍초’다. 박 수석의 민주통합당 공천과 국회 입성 여부에 따라 행시 24회 안 풍경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청풍초’ 회장은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제10대 차관. 동기 가운데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아 자연스레 형 역할을 했다. 건교부 공보관, 신공항건설기획단장, 제23대 철도청장을 거쳐 법무법인 태평양에 몸담았다. 동기인 최원영 전 복지부 차관도 지난해 11월 태평양에 합류했다가 이달 5일 제5대 통합의료진흥원장으로 취임했다.

 청풍은 ‘부드럽고 맑은 바람’이다. 모임은 ‘어떤 목적 아래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이다. 행시 24회는 1980년 12월 최종 합격자가 발표된 뒤 이듬해 4월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처음 만났다. 그 어려운 시절에 ‘부드럽고 맑은 바람’을 초심으로 품었다. 이제 30년쯤 묵었다. 묵을수록 곰삭게 마련 아닌가. 그 바람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기를 바란다. 더 깊어지기를 기원한다.

 ‘청풍초’는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바람을 깊이 불어넣을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자신이 어느 곳(직위)에 섰든 사회에 미칠 영향력이 크다. ‘관직을 함께 시작한 동료’를 보살피는 것, 잘 뭉치는 것을 월장할 큰 호흡을 선보일 때다.

 우리 사회에 부드럽고 맑은 ‘관료 바람’이 분 적 있던가. 우리는 그런 바람을 기다린 지 오래다.

 이은용 논설위원 ey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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