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년 1경원(11조달러) 이상(월드에너지아웃룩 2006). 2030년 3조달러(국제에너지기구). 2017년 1250억달러(프로스트 앤 설리번).
시장조사기관들이 전망한 세계 스마트그리드 시장 규모다. 조사기관과 시점에 따라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미래 유망 산업임에 틀림없다. 스마트그리드협회에 따르면 국내에서만 스마트그리드로 2030년까지 신규 일자리가 연평균 5만개씩 생겨나고 74조원의 내수 창출, 3조2000억원 규모의 신규 발전소 건설 수요를 줄일 수 있다.
정부는 지능형전력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2004년 말 연구개발(R&D)에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한 전력IT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전력IT 추진종합대책을 수립했다. 2005년에는 핵심연구개발 과제기획을 위한 전력IT기획단을 구성했고 2007년에는 전력IT사업단을 발족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지능형전력망·전력IT이라는 말은 스마트그리드로 통합됐다. 2009년 정부 지능형전력망(스마트그리드) 사업을 수행해 온 전력IT사업단이 스마트그리드사업단으로 확대 개편됐고 스마트그리드협회라는 업계 단체도 생겨났다.
당시 신문사에는 지명도 있는 IT컨설팅 업체를 비롯해 많은 업계 관계자가 스마트그리드에 대한 문의가 빗발쳤다. 스마트그리드 정책을 만드는 관료나 업계 전문가와 네트워크를 연결해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였다.
정부 주도 제주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 구축 프로젝트가 뜨자 민간 기업의 반응은 더 뜨거웠다. 총 5개 분야 10개 공모 컨소시엄에 168개 업체가 참여했다. 한국전력을 비롯해 전자IT기업(삼성·LG), 통신사업자(KT·SKT)와 정유사·건설사·SI기업·정보보호기업·전기기업 등 다양한 분야 기업이 몰렸다. 표면상으로 168개 업체이지만 협력업체를 감안하면 제주 실증단지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기업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대한민국 대표 전력기업인 한전은 스마트그리드 정책의 이니셔티브를 갖기 위해 2030년까지 스마트그리드에 8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제주 실증단지 사업에서는 정부 지정분야 2곳을 포함 5개 분야 모두에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그중 한 분야는 공모에 탈락했지만 정부 지원 없이 자체 예산을 들여 참여했다. 이랬던 한전이 급변했다. 6일자로 단행한 조직개편에서 사장직속 스마트그리드 추진실을 3년 만에 개발사업본부 아래 스마트그리드사업처로 변경했다. 팀도 4개 팀에서 2개 팀으로 줄였다. SKT·KT 등 대기업도 잇따라 스마트그리드 관련 조직을 축소했다. 중소기업도 당장 매출로 연결되지 않는 스마트그리드 사업에서 하나둘 발을 빼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차세대 유망사업으로 꼽힌 스마트그리드가 천덕꾸러기로 변했다.
2010년 스마트그리드 국가로드맵 발표 때만 해도 정부는 2030년까지 초기 핵심기술 개발과 신제품·시장창출·공공인프라 등에 2조7000억원을 지원하고 민간에서도 24조8000억원을 자발적으로 투자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 상황으로는 24조8000억원의 민간투자를 이끌어 내기는 힘들 것 같다. 돈이 되는 시장에 주저 없이 투자하는 민간 기업이지만 지금처럼 한전이 전력판매권를 꼭 쥐고 있는 구조에서는 새 시장을 창출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기업들이 제주 실증단지 사업에 앞다퉈 참여한 것은 새로운 시장과 비즈니스 모델 창출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국내 통신시장에서 토종 사업자들이 글로벌 공룡기업 시장을 내주지 않고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경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마트그리드가 천덕꾸러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역시 `전력판매 경쟁`이 최고의 답이다.
주문정 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