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출연연 차기 정부서 개편해야

[ET단상]출연연 차기 정부서 개편해야

황병상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행정실장 bshwang@kbsi.re.kr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과학기술계 18개 출연연구기관의 법인격을 폐지하고 1개 법인(국가연구개발원)으로 통합하는 법률 개정안을 만들어 2월 임시국회에 심의를 요청해놨다.

국과위가 연구원의 정년 환원, 기관평가 주기의 조정 등 소프트웨어적 안정화에 의지를 보인 것은 인정받을 만하지만 융·복합연구를 위해 기관통합이라는 하드웨어적 변화를 추진하는 데는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 정책내용의 적절성(appropriateness) 측면이다. 국가안보와의 연계성 때문에 선진국과 국제기구에서도 단일 법인으로 운영하는 원자력연구원, 항공우주연구원과 국가표준체계 유지를 위해 법인격이 바람직한 표준과학연구원을 여기 포함한 것은 문제다. 국가천문업무의 상징성으로 인해 OECD 대부분의 나라가 독립기관으로 운영하는 천문연구원을 부설기관으로 격하시키는 것도 재검토가 필요하다.

미국 과학재단(NSF) 정의에 따르면 융합연구는 나노기술, 생명기술, 정보기술 및 인지과학을 상호의존적으로 결합하는 연구를 의미한다. 전자통신연구원을 빼고 융합연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밀가루 없이 빵을 만들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융합연구는 수요견인적인 성격이 강하므로 필요한 수요가 있을 때 하는 것이지 `융합을 위한 융합`이나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둘째, 정책 결과의 효과성(effectiveness) 측면이다. 정부는 개편의 총론만 말할 뿐 세부적인 실행방안 준비는 부족하다. 세밀하게 준비해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법인데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정책을 실험하겠다는 것은 무모하다. 안개 속에 복병이 있는지 낭떠러지가 있는지 모르면서 정예 군사들을 안개 속으로 진군하게 해서는 안된다.

정부는 규모를 확대할 경우 힘센 조직이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덩치는 컸지만 멸종한 공룡과 빙산을 보고도 피하지 못해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거대한 조직은 변화에 둔감하고 민첩성을 잃게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셋째, 정책 시행의 적시성(timeliness) 측면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법률을 심의할 국회의원들은 총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설립 이래 46년간 지속돼온 체제를 허물려고 한다면 차분하게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 국가연구개발원장 임기는 5년이다. 6월에 임명하고 나면 6개월 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된다. 원장은 대통령의 과학기술 철학을 이해하고 함께 호흡해야 하는데, 원장을 바꿀 수도 바꾸지 않을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지 않겠는가?

연구개발 그 자체는 정치와 상관없이 진행되어야 하지만 체제개편은 엄연히 정책적 선택을 포함하는 정치행위이다. 그래서 장관직을 정무직(政務職)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현장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의 설문조사 결과 85%가 반대하고 있다. 정부관계자도 인정하듯 현장의 과학자들은 정부 정책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무리하게 밀어붙이려 한다면 상황만 악화될 뿐이다.

출연연 개편 시도는 현시점에서 중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정당은 이 문제를 대선공약으로 다루게 될 것이다. 정부는 보고서를 만들어 12월 하순에 구성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이첩해 차기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이 순리이다. 인수위는 출연연의 거버넌스를 과학기술부 부활 같은 정부부처의 거버넌스와 함께 검토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