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제공 확대 분쟁 "대가산정 문제 논의할 수 있다"

“설비제공 확대는 현실성도 없고 과도한 의무다.” “독점 관로 개방으로 서비스 경쟁이 촉진된다.”

통신필수설비 제공고시(기준) 개정안을 사이에 둔 KT와 이용사업자 간 대립은 협상 여지가 없어 보인다. 제도 활성화 효과와 현 상황에 양측 해석이 정반대기 때문이다. `KT=시장지배적 사업자`란 전제부터 KT와 방통위·이용사업자 견해차가 크다.

하지만 해결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결국 이해에 따른 갈등인 만큼 대가산정 등 기준에서부터 양보와 합의가 이뤄진다면 의외로 어렵지 않게 풀릴 수 있다. 정책기관인 방통위는 “대가산정이 문제라면 논의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양측 합의를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또한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이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KT “적정대가·무단사용 제제 논의가 우선”=개정안 주요 내용은 유선 의무사업자(KT)가 이용사업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설비 범위를 늘린다는 것이다.

KT는 설비제공 범위 확대로 인한 투자 감소와 더불어 개정안이 실효성을 갖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특히 산업계 전체가 아닌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양사 이득에 초점이 맞춰진 개정안이라고 주장하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등 이용사업자 측은 “고시가 개정되면 오히려 지·간선망 및 백본망 등 연계구간 투자가 확대된다”면서 “이용사업자들은 최대 1조3300억원 규모 투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KT 관계자는 “인입관로는 작년 한 해 이용사업자 요청 자체가 개방범위 2.8%에 불과할 정도로 절대적으로 저조하다”며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특정 사업자 무임승차만 방조하는 안”이라고 말했다.

KT는 현재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재벌그룹도 설비제공 의무를 부여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투자 촉진 및 설비제공 활성화가 목적이라면 이들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또 개정에 앞서 제공에 대한 적정 대가산정, 무단사용 제재안 등 현실적인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적정대가 산정, 무단사용 제제 없이 무조건 개방하라는 식 정책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며 “개방을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설비제공에 따른 임대요율 재책정, 무단사용 제제방안 등 현실적인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KT, 의무 져버려선 안 돼, 대가산정이 문제라면 논의 가능”=고시 개정안을 마련한 방송통신위원회 입장은 명확하다.

KT가 의무사업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않아 통신시장 경쟁 촉발과 건전한 생태계 구성이 어렵다는 것이다.

KT 측에서 선행과제로 제시한 대가산정, 무단사용 제제 등은 바로 논의할 수 있는 만큼 본질에 집중하자는 제언도 나왔다.

2년마다 이뤄지는 의무사업자 설비제공 대가산정은 하반기 재논의를 앞두고 있다. 방통위는 또 고시개정이 마련되는대로 중앙전파연구소와 협력해 이용사업자 설비 무단사용 사례를 적발해 제제를 가할 방침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하반기 제공 대가를 다시 결정해야 하는 만큼 언제든지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KT에 지워진 의무가 과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광케이블 설비를 제공하는 조건인 △설비 후 3년 동안 제공유예 △관로 만공(꽉 찼을 때) 시 케이블 제공 등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 만큼 개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현재 KT를 제외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사 설비 80%가 한전 시설을 이용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도 개정을 서두르는 주요 이유다.

방통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회선 도매시장이 죽어있는 상태”이라며 “소매시장에 집중된 정책으로는 통신요금 인하 등 경쟁으로 생기는 효과를 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설비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KT마저 음성적으로 관로를 뚫는 등 폐해가 심각하다”며 “설비제공 유예기간 등으로 오히려 KT는 자산 주도권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통위 측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제도 자체를 무시해 분쟁을 이어가는 것보다는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건전한 생태계 구성을 위해 올바른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