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라인] 의료기기 산업 위기를 기회로

삼성전자·LG전자 관계자들이 최근 서울에서 2시간 거리인 강원도 원주 동화 의료기기 산업단지를 처음 찾았다. 방문 목적은 의료기기 사업 관련 중소기업과 협력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논의하기 위해서다.

대기업이 의료기기 산업을 달리 보기 시작한 것이다. 반도체·LCD 등 부품과 전자제품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시장성숙으로 성장동력에 힘을 잃으면서 의료기기를 미래 먹거리로 인식한 셈이다.

과거 삼성전자·LG전자는 의료기기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의료용 디지털 엑스레이 핵심 부품인 패널 형태의 검출기 기술을 10년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실용화해 놓고도 수년동안 방치한 바 있다.

이유는 간단했다. LCD산업이 호황을 누린 탓에 LCD 패널을 한 장이라도 더 찍어내기 위해서였다. 검출기를 LCD 생산라인에 투입하겠다고 몸소 나선 임원도 없었고 CEO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다.

삼성이 뒤늦게 2008년 LCD 라인에서 검출기 양산에 들어갔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지멘스 등 글로벌 업체들이 독식하고 있는 상황이 되버렸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디지털 엑스레이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LG전자도 마찬가지다. 지멘스메디칼시스템 부사장 출신인 김진하 박사가 지난 2007년 LG전자 쌍둥이 빌딩을 찾았다. 초음파 영상진단기 전문가인 김 박사는 20년간 지멘스에서 쌓은 개발 노하우를 모국 땅에서 꽃 피우고 싶다며 투자를 요청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LG전자는 이후 전자안마기 등을 일본에서 수입해 헬스케어 가전이라고 선전했지만 시장 반응은 차가웠고 의료기기 산업 주변을 겉도는 상황을 맞게 됐다.

삼성·LG는 이번 방문을 계기로 우수 중소 의료기기 업체와 공동 연구개발·공동 마케팅·브랜드협력(OEM) 등 다양한 형태로 의료기기 사업을 육성·진행한다고 한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대기업과의 협력은 사업 확장에 보탬이 될 일이다. 기술력은 우수하지만 자본과 해외 네트워크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 역시 반길만하다. 의료기기 산업을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 삼기 위한 정부 육성 정책과도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오는 2020년 무역 2조달러 목표 달성을 위해선 의료기기 등 신 성장 산업 분야가 단단히 받쳐주지 않는 한 요원하다.

삼성·LG와 중소업체 간 협력으로 의료기기 산업에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주춤하면 세계 의료기기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가 될 기회를 다시는 가질 수 없다. 한·EU 자유무역협정(FTA)과 한·미 FTA 체결을 계기로 국내 의료기기 산업은 백척간두에 서 있다. 끈끈한 대중소 협력으로 기회로 만들어야 할 때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