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초식동물이 사는 법

초식동물은 불안할 때 주거지에서 나오지 않는다. 불가피하게 나올때도 주위를 세심하게 살피고 먹이를 구한 후에는 재빨리 집으로 돌아간다. 육식동물에 잡아먹힐 염려 때문이다. 이러한 습성은 세대를 이어 전해져 본성으로 자리잡았다.

경기가 안 좋을 때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는 이유도 비슷하다. 불안이 확산되면 사람은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물건을 사는 행위를 삼간다. 진화과정에서 인간 유전자 속에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경제는 심리라고 얘기한다. 한때 이명박 정부 초기 경기침체 원인을 심리 때문으로 돌린 적이 있다. 경제가 나쁘다고 생각하고 지갑을 안 열면 더 나빠지고, 좋아진다 생각하고 지갑을 열면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소비자가 불안심리를 무릅쓰고 소비를 늘리면 경기가 되살아나는 것이 원칙이다. 물론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나 당장 소비를 늘리면 경기가 더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불안심리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객관적으로 주변에 보이는 상황이 불안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먹이활동을 하던 동료가 사자에게 먹히는 장면이 불안심리를 키우고 이웃 주민의 실직이 불안심리를 키운다. 만약 과감하게 땅굴에서 나온 초식동물이 희생되는 모습을 본다면 야외활동이나 먹이 활동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이처럼 객관적 불안이 존재하는데 심리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정책실패를 외부 요인으로 돌리려는 책임회피성 발언이다. 막연한 불안심리는 없다. 유럽발 재정위기와 유가 급등 등이 현재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이고 이같은 불안요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소비심리는 계속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어제는 경칩이었다. 알다시피 날씨가 따뜻해져 동면하던 동물이 땅속에서 깨어나고 초목의 싹이 돋기 시작하는 시기다. 밖에 나가면 잡아먹힐까 불안하긴 하지만 먹이가 풍부해지고 활동하기 좋은 시기가 다가오면서 이를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도 올해는 초식동물인 소비자가 불안 심리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 더불어 불안감을 떨치고 과감히 창업할 수 있는 분위기도 봄과 함께 찾아왔으면 좋겠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