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스마트시대의 자화상

[데스크라인] 스마트시대의 자화상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들리면 전광석화같이 내 휴대폰을 꺼내본다. 내 휴대폰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다. 쑥스럽다. 출퇴근 지하철 안 풍경은 단조롭다. 고개를 숙인 자와 고개를 든 자 두 부류다. 고개 숙인 자는 죄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시간이 갈수록 고개 숙인 자는 늘어만 간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거나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젊은이 역시 십중팔구는 고개를 떨구고 있다. 문자입력 속도는 100m 트랙을 달리는 우사인 볼트 저리 가라다.

휴대폰은 내 분신이 된지 오래다. 깜박 잊고 집에 두고 나온 날엔 온 종일 좌불안석이다. 금단현상이다. 지인에게 유선전화로 통화하려 해도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외고 있는 전화번호는 열 개도 안 된다. 디지털 치매다. 퇴근하면 다른 일 제쳐두고 부재중 수신내역을 먼저 살펴야 겨우 안심이 된다.

학생들은 수업시간 중에도 `카톡질`이다. 화장실 가서도, 밥 먹을 때도 한손엔 휴대폰이 들려있다. 하루에 200건 이상 문자를 주고받기도 한다. 거의 휴대폰 노예수준이다. 암산 능력도 감퇴됐다. 휴대폰 계산기 기능에 의존하다 보니 암산으로 셈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자동차에 달려 있는 내비게이션이 먹통인 날엔 졸지에 초보운전자가 된 기분이다. 그 바람에 길눈도 어두워졌다. 요사이 부쩍 바보가 된 느낌이 커졌다. 휴대폰 일정관리 앱을 확인하지 않으면 며칠 후 약속일정도 가물가물하다. 그동안 내가 너무 편하게 산 거다.

`노모포비아`라는 말이 있다. 노(no) 모바일폰(mobilephone) 포비아(phobia) 세 단어가 복합됐다. 휴대폰이 없으면 불안해지고 심지어 공포심까지 생기는 강박증을 일컫는다. 영국 휴대폰 사용자 66%가 노모포비아를 앓고 있다는 통계가 엊그제 나왔다. 나이가 어릴수록, 여자가 남자보다 이 증세는 심하다고 한다. 굳이 통계를 내지 않더라도 우리 처지도 다를 바 없다. 그러고 보니 우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거다.

닐 포스트먼은 오늘날 인간을 `생각 없는 존재`라 말한다. 그렇게 만든 건 다름 아닌 `기술`이라 했다. 그는 기술이 사고와 행위 전반을 통제하고 있으며, 인간이 기술에 종속된 상황을 일컬어 신조어 `테크노폴리`로 정의했다. 애초 기술은 신의 진리를 추구하는 도구였지만 이후 신과 분리된 객관적 진리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그 자체가 신이 돼 인간을 지배하는 유일한 진리가 됐다는 설명이다. 설득력 있다.

다행히 그는 처방책도 제시했다. 과학만능주의 이전의 역사와 전통을 재현해 도덕적 건강성을 회복하면 된다 했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기술에 종속되지 않도록 스스로가 현시대의 주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뜻일 게다. 나는 노력해 볼 테다. 하지만 나보다 더 심각해 보이는 우리 아이들의 병은 어떻게 낫게 할까. 참으로 고민스럽다.

최정훈 정보산업부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