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마트그리드협회가 지난달 지능형전력망협회로 이름을 바꿨다. 임의단체에서 `지능형전력망 구축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지능형전력망촉진법)`이 정한 법정단체로 거듭났다. 법정단체로 바뀜에 따라 지식경제부로부터 관련 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할 수 있는 법적지위를 갖게 됐다. 협회 위상과 책임이 기존 임의단체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지능형전력망협회 홈페이지를 둘러봤다. 협회가 하는 일은 스마트그리드 인프라 구축사업과 스마트그리드 관련 조사·분석업무, 스마트그리드 정책관련 산업별 의견수렴, 스마트그리드 사업화를 위한 표준화사업 등으로 나와 있다.
궁금한 점이 생겼다. `이름은 지능형전력망협회인데 하는 일은 왜 스마트그리드일까`하는 점이다. 홈페이지 어디를 봐도 온통 스마트그리드다. 협회 이름과 협회 근간이 되는 지능형전력망촉진법 외에는 지능형전력망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다.
협회 명칭이 어떤 이유로 지능형전력망협회로 바뀌었는지 스마트그리드 전문가에게 물어봤다. 누구도 명쾌한 답변을 내지 못했다. 돌아온 대답은 “글쎄요. 저도 그것이 궁금하네요”였다. 누군가 대답했다. 지능형전력망촉진법이 정하는 법정단체가 되려면 기관 명칭을 법에 맞춰야하기 때문에 바꾼 것 같다는 설명이다. 나중에 법률과 기관 이름이 다르면 논란 소지가 있을 수도 있고 법에는 영문을 안 쓰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영문을 남발해 와 닿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철국 의원은 2009년 국감에서 “지능형전력망이라는 표현을 놔두고 알기 어려운 스마트그리드라는 영어 표현을 쓴다”며 영어 표현을 하지 말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논리라면 정부 스마트그리드 정책을 수행하는 스마트그리드사업단도 지능형전력망사업단 쯤으로 명칭을 바꿔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사업법이나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집단에너지사업법, 콘텐츠산업진흥법처럼 영어표현이 들어간 법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두 한글로 바꿔야 하는지 의문이다. 이분법적 논리를 적용해 모든 법률을 한글화 또는 영문화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 적확한 우리말 표현이 없는 단어나 산업현장과 생활에 익숙한 단어는 영문 그대로 쓰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인터넷이나 멀티미디어·에너지·콘텐츠처럼 스마트그리드도 같은 잣대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스마트그리드라는 표현이 일반화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초기에는 전력IT나 지능형전력망으로 번역해서 사용하기도 했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스마트그리드라는 말로 바뀌었다. 전력IT나 지능형전력망만으로 스마트그리드를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그리드는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미국은 노후화한 전력시스템을 고도화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고 유럽은 신재생에너지와 전력계통을 연결하는 인프라에 맞춰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전력망을 보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스마트그리드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구현할 플랫폼으로 정의할 수 있다.
2009년 정부 사업을 수행해 온 전력IT사업단을 스마트그리드사업단으로 확대 개편하고 업계 단체인 스마트그리드협회가 발족한 것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업들도 지능형전력망보다는 스마트그리드를 선호했다. 조직 명칭도 지능형전력망보다는 스마트그리드를 넣어 지었다. 이런 상황에서 업계를 대표하는 협회가 스마트그리드를 버리고 지능형전력망을 선택했다. 법정단체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소관법과 협회 명칭을 맞춰야 하는 명분이 있었겠지만 시대적 흐름에서 후퇴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주문정 그린데일리 부국장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