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R&D 4.0 시대를 연다](3)생기원, 중소·중견 기업 기술 애로 해소한다

중견·중소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겪는 아킬레스건은 전문 기술 인력 부족이다. 지식경제부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생산기술연구원 등 출연연 인력을 동원한 기술인재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사업 초기라 기업과 출연연 간 기술인력 미스매칭 등 제도적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 많지만 당장 전문 기술 인력이 필요한 중견·중소기업에는 단비와 같다.

◇중견기업의 미래 비전을 디자인=반도체·LCD장비 제조업체 디바이스이엔지는 첨단 기술·기법을 과감히 도입해 수익성을 높이면서 환경오염 문제도 해결하는 `롤투롤 잉크젯 프린팅 장비` 사업에 진출하기로 했다.

이 기술은 잉크젯 프린터처럼 전자회로를 인쇄하는 첨단기법으로 도금을 하지 않아 공정 단축에 따른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감광제, 현상액 등 오염 물질 방출도 줄일 수 있어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다.

하지만 이 제조기술은 대기업과 중견기업 일부만이 이론적인 생산기술을 확보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데다 시장도 열리지 않은 탓에 이 회사 도전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곧 난관에 봉착했다. 세부 기술 개발에 들어갈수록 기존 사업 영역에서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 독자 기술로 장비 개발을 마치고도 제대로 완성했는지를 검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최봉진 디바이스이엔지 사장은 “직접 운영해보면서 안정성과 성능을 테스트해야 하는데 제작 외에는 경험이 없어 검증을 맡아줄 경험과 지식을 가진 전문가가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지경부 기술인재지원 사업에 도움을 청했다. 생기원은 이 분야에 풍부한 기술과 경험을 가진 전문 연구인력 두 명을 지원했다.

이들 연구원은 롤투롤 잉크젯 프린팅 장비가 실제로 가동할 때 발생하는 다양한 시나리오를 설정하고, 시나리오상에서 시스템이 안정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지를 테스트하는 작업 그리고 개선 과제를 도출했다. 이 과정을 거쳐 롤투롤 프린팅 장비 완성도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디바이스이엔지는 지난해 연매출 550억원을 올린 기존 사업 외에도 이번 롤투롤 잉크젯 프린팅 장비 개발 지원 결과를 토대로 향후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최봉진 사장은 “생기원 연구원들이 롤투롤 프린팅 분야의 기술을 매개로 장단기 과제를 세심하게 제안하고 기술 발전 방향 등을 조언해줘 향후 회사 비전의 큰 틀을 잡았다”고 말했다.

◇발상 전환으로 미래 시장을 선점=자원 재생산과 친환경 사업에 도전한 중소기업 에이유도 실패와 좌절 속에서 생기원 전문 인력 지원으로 친환경 사업 진출 기반을 닦았다. 한정구 에이유 사장은 “그동안 플라스틱 소재개발에 주력해왔지만 자원 재생산, 친환경 관련 사업에 눈을 떴을 때 원료에 들어가는 작은 첨가제조차 어떤 것을 넣어야 하는지 테스트 방법이나 기준 등이 막막했다”고 말했다.

에이유는 지난 2010년 생기원 문을 두드렸다. 에이유와 생기원이 함께 진행한 것은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소재개발 사업이었다. 동서식품이 에이유에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포장재를 만들 수 있는지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동서식품은 커피 제조 후 남는 찌꺼기를 부담금을 내면서 폐기물로 처리해야 하는 게 골치였다. 포장 과정에서도 커피용기가 깨져 소비자가 다치는 일이 발생, 소비자 불만이 들어오는 일이 많았다.

한정구 사장은 커피 찌꺼기를 활용해 포장재를 개발한다면 동서식품 마케팅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에이유에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반드시 개발에 성공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초기 단계부터 난관에 맞닥뜨렸다.

커피 찌꺼기가 일반 석유화학 원료와 잘 섞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에이유는 생기원과 이러한 점을 중점 연구 과제로 삼고 본격적인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양측은 오랜 시간과의 싸움에서 실패할 것 같았던 커피 찌꺼기를 원료로 한 플라스틱 제품 개발을 지난해 성공했다. 커피 찌꺼기와 같은 천연물을 이용해 분말 개질 및 배합공정 기술, 커피 찌꺼기를 포함하는 바이오매스 플라스틱 펠릿 제조기술 등 세계시장에서 통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에이유는 올해 동서식품에 포장재로 납품하기 위한 시제품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에이유는 이를 계기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포장재로 쓰이는 데 한계가 있던 발효식품, 수산물, 유제품 등 제품 특성을 고려해 제작한 분해성 포장재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안수민기자 sm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