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초 한 부품기업이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연결기준실적만 언급하지 말고 개별기준 실적을 추가하고 고객사 내 점유율이 1위라는 표현과 향후에도 수혜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삭제해달라는 요지다.
연결재무제표는 해외 자회사나 여러 계열사를 둔 기업의 실적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기위해 각각의 개별 재무제표를 종합해 작성하는 회계방식이다.
대기업들은 지난해부터 의무화됐다. 중소기업의 경우 연간실적은 지난해부터, 반기·분기 실적은 내년부터 연결기준으로 발표해야 한다. 본지는 이러한 취지에 따라 연결실적 중심으로 보도해왔다. 이 회사는 연결기준으로는 매출과 영업익이 모두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개별기준으로는 영업이익률이 악화됐다. 향후 수혜가능성은 주주들의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완곡한 설명이 있었지만 다른 배경이 있음을 짐작케 했다. 투자자들에게 실적 개선을 자랑하고 긍정적인 미래전망을 제시해야 하는 상장사임에도 오히려 실적 부진을 강조해달라는 이야기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같은 황당한(?) 요청은 이번만은 아니다.
실적이 좋을수록 부품 기업들은 기사화하지 말라고 기자에게 읍소한다. 고객사로부터 시달림을 받기 때문이다. 정정보도를 요구한 기업의 연결 영업이익률은 5% 내외에 불과했다.
전자신문은 올해 초 애플협력사와 국내 대기업 협력사의 영업이익률을 비교해 보도했다. 협력사 이익을 더 보장할 것으로 생각했던 애플보다는 국내 기업 협력사들이 오히려 더 영업이익이 높다는 내용이다. 기사 반응은 뜨거웠다. 언급했던 국내 대기업 다수 임직원들은 상생노력덕분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며칠 뒤 그 기사에 언급된 협력회사 중 하나는 본지 기사를 복사해 가져온 대기업 구매직원에게 단가인하를 요구받았다고 전해들었다.
동반성장이 화두로 부상한 지금도 협력사의 실적 개선을 반가워하고 자랑스러워하기 보다는 이를 단가인하에 활용하는 것은 여전한 관행인 듯 싶다. 물론 이러한 관행은 특정 대기업만의 문제는 아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매의 예술`은 유효한 도구다. 문제는 구매 예술을 단가인하로 동일시하는 인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총수나 최고경영자가 아무리 상생을 강조해도 구매부서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최근 결국 사퇴했다. 정치적 배경을 의심받지만 그가 한 말은 주목할만 하다. 그는 “대기업은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반면 중소기업은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한다”면서 “양극화는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동반성장은 IMF금융위기이후 여러위기를 거치면서 발생한 양극화를 극복하자는 시대정신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여전히 갈길이 멀어 보인다. 서로 윈윈하는 상생의 길은 없는 것인가.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