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신설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진다. 정치권의 부처 신설 공약도 넘쳐난다. 20년 만에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지니 바꿔보려는 욕구가 큰 탓이다.
당 차원에서는 여야 할 것 없이 정보통신기술(ICT), 과학기술 부흥을 전담할 부처 부활 또는 신설에 목소리를 높인다. 새누리당은 정보통신, 과학기술 전담 부처 신설을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통합당도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 등의 부활을 약속했다. 아울러 중소기업부 신설도 선거 공약에 포함했다.
이익·시민단체의 요구도 거세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아예 올해 사업계획에 중소기업청을 중소기업부로 승격하는 내용을 담았다. 대통령 지시로 지식경제부는 중견기업 3000개 육성 목적의 중견기업국을 5월 이전에 신설할 태세다. 이와는 별도로 지식경제부는 소프트웨어융합산업국 신설도 추진 중이다.
해양수산부 부활 요구도 뜨겁다. 국내 해양수산단체와 시민단체가 대거 참여하는 `국민운동본부`와 `범국민 전국운동연합`이 각각 해양수산부 부활을 목표로 뛰고 있다. 부산, 목포, 여수, 광양, 해남 등 해양도시도 이에 가세했다.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높아진 관심과 중요성, 글로벌 트렌트를 고려한 에너지 독립부처 신설 요구도 있다. 정말 많다. 합당한 이유와 명분도 넘쳐난다. 주요 선거가 같은 해에 겹쳐 치러지면서 경청할 귀가 그만큼 많아진 덕이다.
올해처럼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몰렸던 20년 전 1992년의 상황은 어땠을까. 당시에는 해양전담 부처 신설 요구가 뜨거웠다. 삼면이 바다인 지형적 특성을 고려해 해양 개발, 이용, 보존을 관장할 부처가 그 시절 관심사였다. 수자원관리체계 재정립도 화두였다. 당시 건설부, 내무부, 농림수산부, 동력자원부, 환경처 등으로 나뉘어 있던 수자원 관리 업무를 국가차원에서 조정하고 중재하라는 요구였다. 이는 학계의 건의 정도로 그쳤다. 참고로 해양수산부는 4년 후인 1996년에 신설됐다.
이게 다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거론됐던 정보통신부 신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해 이슈가 되질 않았다. 정보통신부는 모든 선거가 끝난 이듬해에서야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1994년에 신설됐다. 1992년 3월 정부가 부처 신설 또는 부처 내 기구신설, 공무원 정원을 억제하면서 인력감소분만 충원하는 상계조정제도를 강조한 탓도 있지만 당시 부처 신설 요구는 지금처럼 뜨겁지는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의 분위기는 그때와 사뭇 다르다. 일일이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요구가 많아졌다. 여기에는 4년 전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보통신부, 과학기술부, 해양수산부가 폐지된 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고 폐지된 부처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오늘날 이 많은 요구사항을 만든 건 아니다. 집권 말 정부 권력이 약해진 틈을 타 반사이익을 챙기려는 정치적 기만행위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그 명분도 충분하다.
정보통신부가 존재한 과거 14년, 과학기술부 역사 10년은 대한민국을 21세기 ICT 강국에 반열에 올려놓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부처 폐지 후 지난 4년간 내내 국민 모두가 아쉬웠고, 5년차 들어 그 후회가 커졌다면 여기서 얻어야 할 시사점은 분명 있다.
이틀 후 총선이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지난주 한 대학강연에서 진영 논리나 정파적 이익이 아닌 국민과 국익을 생각하는 사람을 뽑으라 했다. 공교롭게도 여야 모두 ICT 거버넌스 부활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혼란스럽다. 행복한 고민이었으면 좋겠다. 안 원장의 말처럼 `진정성`과 `실행의지`가 누가 더 강한지 남은 이틀간 곰곰이 따져봐야겠다. 말과 행동이 다른 공약(空約)과 인기영합 주의의 포퓰리즘도 걸러내야한다. 행복과 불행은 우리 선택에 달렸다.
최정훈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