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상반기 출범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국과위)를 바라보는 과학기술계는 다소 `실망`스러운 표정이다.
출범 당시만 하더라도 상설 행정위원회로 격상돼 국가과학기술정책을 기획·조정하고 흩어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배분·조정 권한을 가짐으로서 명실상부한 과학기술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할 것이란 기대가 컸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국과위는 기대만큼의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는 게 전반적 평가다. 기획재정부·교육과학기술부·지식경제부 등 `힘 있는 부처` 이견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과기계는 차기 정부에서 국과위 위상을 강화해 국과위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반면에 강력한 과기 전담부처에서 짜임새 있게 과학기술을 국정운영 중심에 세우자는 목소리도 있다.
◇부총리급 국과위 만들자=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대과연)이 27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시한 차기정부 조직개편안은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하자는 게 골자다.
지난해 상설 국과위 출범 이전부터 과기계가 꾸준히 요구해 온 내용이기도 하다. 과학기술 대융합 시점에서 모든 부처 혁신역량을 강화하고 범부처적 종합조정능력을 가진 조직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대과연이 제시한 바에 따르면 부총리급 국과위는 범부처 BT, IT, NT 기반 융·복합 연구개발 기획·조정과 부처별 혁신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국과위를 부총리급으로 격상하는 이유는 또 있다.
과기계 관계자는 “현 국과위 출범 이후 1년 동안 다른 부처 의견을 조율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며 “부총리급 위상이 아니고는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러 부처로 나뉜 연구개발(R&D) 사업을 조정하는 강력한 리더십을 갖기 위해서는 부총리급 위상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과위 위상을 강화해 기초기술과 산업분야에 균형있는 투자를 조율해야 한다”며 “과학기술 기본계획, 녹색성장 계획, 신성장 계획 등 유사한 국가 R&D 계획을 상위에서 조율하고 문제해결이 가능한 실질적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 국과위로는 한계=국과위 위상강화 주장의 배경에는 현 국과위 체제로는 컨트롤타워로서 제 역할을 못한다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과위 역할에서 부처 간 협력이 중요한데 R&D 예산 배분조정 범위가 애매하고 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 문제가 정리 안 돼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 국과위는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계획인 국가과학기술 기본계획을 수립한다. 각 부처는 기본계획을 토대로 시행계획을 마련하고 국과위가 이를 다시 조정한다. 이와 동시에 수립된 전략에 따라 국과위가 R&D 예산을 배분·조정하고 그 결과를 평가한다. 표면적으로 국과위는 국가과학기술 전략과 예산 집행권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학기술기본법`에는 각 부처 기본계획을 어느 범위까지 포괄할 지 명확한 규정이 없다. 또 R&D 사업 예산 배분·조정 범위가 국방·인문R&D·경직성 경비를 제외한 `모든 국책사업`으로 명확하지 않다.
무엇보다 행정위원회인 국과위가 큰 부처를 상대로 권한을 제대로 발휘하는 데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대표적 예가 정부출연연구기관 선진화 작업이다. 국과위는 해당 부처인 지경부와 교과부 등 해당부처 협의를 거치는 작업부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겼었다. 난항 끝에 정부법안을 마련, 국회에 제출했지만 부처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반쪽짜리 개편안이라는 지적과 함께 법안은 폐기될 상황이다.
한 과기계 원로는 “출연연 선진화 작업은 국과위 출범 배경과 관련된 중요한 사안이지만 국과위는 선진화 작업에서 주도권을 갖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라는 합의제 기관이 가지는 한계도 있다.
변재일 민주통합당 의원은 “위원들이 모여 의견을 조율해 의사를 결정하는 합의제 행정기관은 결코 과기 분야에 적절하지 않다”며 “합의제는 의사결정 독선을 막기 위한 장치로 과학기술 육성 분야와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손진훈 충남대 교수는 “국과위는 `과학기술기본법` 제9조에 규정된 기본계획수립·예산 배분·조정, 정책조정, 평가업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지난 1년간의 결과는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기본계획은 한정된 자원을 투입하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으로 획득 기술을 정책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예산 배분·조정을 위해 국가연구개발 사업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심사 방법도 각기 달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부총리급 국과위 이견도 있어=과기계가 주장하는 부총리급 국과위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국과위가 강화된다고 해도 조직 구성원이나 규모 등이 부족하고 예산 배분·조정권을 갖더라도 편성권이 재정부에 있는 상황에서는 임시 처방에 불과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 국민적 관점에서 과학기술 분야에만 반드시 부총리급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대를 얻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국가 전체 R&D 예산은 한해 16조원 규모로 전체 국가예산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다. 또 국민적 관심사는 복지와 일자리 분야로 옮겨가는 상황이다.
특히 과기전담부처 신설과 함께 거론되는 부총리급 국과위가 현실성이 있는지 지적도 있다.
심연미 민주통합당 교육과학기술전문위원은 “민주통합당은 이미 중소기업부, 과기부, 정통미디어부 신설 세 가지를 골자로 한 과학기술정부조직개편안을 제시했다”며 “특히 과기부는 참여정부 시절 부총리 급으로 격상해 위상을 높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기부가 부활하는 시점에서는 대통령 산하에 국과위가 들어가는 것이 마땅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교과부 관계자는 “거시적으로 과학기술을 국정중심에 세운다는 점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실무적으로 과기 분야만 부총리급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며 “현재 예산배분·조정에만 급급한 국과위 대신 기능이 강화된 과기전담부처를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윤대원기자 yun197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