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스마트하지 않은 스마트폰 시장

“바가지 쓸까봐 두려워 조카들에게 부탁해요.” 고무줄 같은 스마트폰 가격이 혼란스러워 판매점에 들어가기조차 겁내는 한 중년 소비자의 고육지책이다.

“우리 회사에서 한국식으로 하면 옷 벗어야 해요.” 외국계 스마트폰 업체 관계자가 기형적 국내 유통·마케팅 구조를 원망하며 늘어놓는 푸념이다.

스마트폰 가입자 3000만 돌파를 눈앞에 둔 `스마트 코리아`. 안타깝게도 스마트폰 유통 시장을 들여다보면 스마트의 `스`자도 찾기 힘들다.

소비자들은 `공짜폰` `○○만원 현금보상`이라는 차양 뒤에 가려진 실제 단말기 가격을 셈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그나마 이를 계산하려는 소비자는 나은 편이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판매점이 이르는 대로 값을 지급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다만 이들은 다음날 주변 사람들로부터 “어! 나는 더 싸게 샀는데”라는 놀림을 감수해야 한다.

산업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제조사가 통신사에 단말기를 공급하는 출고 가격은 의미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같은 단말기, 같은 통신서비스라도 어떻게 할인 프로그램을 설정하는지에 따라 시장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스마트폰 시장 할인 경쟁은 끝이 없다. 아무리 가격을 깎아도 소비자는 바가지를 쓴다고 생각한다. `밑지는 장사가 어디 있냐`는 말은 끝까지 산업계를 물고 늘어진다.

안타깝게도 어디서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와서 통신사와 제조사가 서로를 탓하고 정부의 무능함을 책망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다행히 정부가 최근 단말 유통 구조 개혁을 위한 단말자급제(블랙리스트)와 판매 현장 가격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가격표시제 등을 시행했다.

기존 이동통신 3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가입자를 모집하는 이동통신재판매(MVNO) 서비스도 더디지만 늘고 있다.

오랜 시간 수없이 잘못 끼워진 단추를 한번에 되돌려 놓기는 힘들다. 그래도 하나씩 맞춰나가다 보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단추다. 스마트코리아에 걸맞은 스마트폰 시장을 만들기 위해 정부와 사업자, 소비자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

이호준 통신방송산업부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