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자율 규제 성패는 업계에 달렸다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2002 월드컵의 감동은 생생하다.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은 국민 영웅 대접을 받았다. 같은 해 야구 대표 팀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땄다. 당시 사령탑 김인식 감독은 2009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까지 이뤄냈다.

히딩크와 김 감독을 나타내는 공통 키워드는 `자율`이다. 강도 높은 훈련과 끊임없는 정신력 무장이 국가대표의 최고 덕목이라고 여기던 당시 사회 정서를 감안하면 선수에게 권한을 주고 스스로 훈련하도록 격려한 두 감독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이었다.

두 감독은 좋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비난도 많이 받았다. 히딩크 감독은 프랑스 및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연이은 5 대 0 패배로 경질 여론이 들끓었다. 김 감독 역시 지도자답지 않게 선수 장악력이 떨어진다는 악평에 시달렸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지키지 못하면 강압적 방식보다 나쁜 결과를 내기도 한다. 축구와 야구 국가대표는 달라진 지도 방식에 어리둥절했지만 곧 자율의 참맛을 알게 됐고 스포츠로 국민 통합까지 이뤄내는 성과를 올렸다.

최근 정부와 만화가 사이의 합의를 계기로 콘텐츠 자율 규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게임은 여전히 요원하다. 게임 업계가 7월 시행 예정인 선택적 셧다운제를 이달 조기 도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여성가족부가 강제적 셧다운제를 실시한 후 이뤄진 조치에 불과하다.

이중 규제에 위헌 소지까지 짙지만 셧다운제를 환영하는 국민은 적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 중 게임 업계의 책임 방기가 한몫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셧다운제가 처음 거론된 2005년 이후 게임 업계는 자율 규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자율 규제 당위성만을 앵무새처럼 되뇌었을 뿐 사회적 색안경을 불식시킬 적극적 행동은 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6년간의 지루한 논쟁은 결국 몇몇 청소년의 안타까운 죽음을 계기로 셧다운제 도입 쪽으로 기울었다. 냉철한 논리는 감성에 묻혔고 게임 산업에 `주홍글씨`가 새겨졌다.

최근 일본에서 청소년의 과도한 스마트폰 게임 지출이 이슈로 떠올랐다. 업계는 즉시 강도 높은 자율 규제 방안을 내놨다. 월 결제 금액을 15세 이하 5000엔, 19세 이하 1만엔으로 제한했다. 양국의 실제 화폐 구매가치를 감안하면 2만∼3만원이다. 당장 수입이 줄어도 일본 게임 업계는 단호했다. 이미 두 차례 강제 규제를 경험하면서 일본 게임 업계는 단기 이익에 연연하다가는 장기 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 게임 업계는 이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제2의 셧다운제 등장을 사전에 막을 수 있다.

장동준 콘텐츠산업부장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