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사이에서 금기시된 단어 하나가 최근 인터넷 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바로 `종량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음원 가격 현실화라는 저작권자 요구를 받아들여 대세였던 무제한 정액제를 종량제로 바꾸겠다고 방침을 선회했다.
종량제는 상당히 합리적인 제도다. 본인이 쓴 만큼 요금을 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스로 요금을 관리할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생활과 밀접한 서비스일수록 종량제가 대세다. 쓰레기는 물론이고 수도·전기·가스 등 대부분 서비스가 그렇다. 이들 서비스가 정액제라면 막대한 자원 낭비가 불가피하다.
인터넷과 통신으로 넘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초고속망 서비스는 기본 요금체계로 정액제가 굳어진 지 오래다. 이동전화 요금도 4세대 롱텀에벌루션(LTE)으로 넘어오면서 조금 바뀌었지만 여전히 무제한 정액제가 기본이다.
시장도 이미 정액제에 익숙하다. 가격에 민감한 네티즌은 종량제에 거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사업자도 내심 종량제 쪽에 무게를 두면서 선뜻 목소리를 높이지 못한다. 괜히 나섰다가 돌 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사업자가 꺼려 하는 배경은 아마도 2000년대 초반 KT가 겪은 악몽의 영향이 크다. 당시 KT는 초고속망 요금을 종량제로 변경하겠다고 밝혀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이미 10년이 흘렀지만 분위기는 그때와 다르지 않다. 사실 초기에 유선 시장에서 정액제가 굳어진 배경은 요금을 깎더라도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대의였다. 개별 과금에 필요한 패킷 분석 기술 등도 완벽하지 않았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상당했다. 무선에서는 와이브로를 앞세워 공격적으로 나서는 KT에 대응할 SK텔레콤의 마지막 카드가 무제한 요금제였다. 어찌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강했다.
이제는 다르다. 무엇보다 상황이 너무나 절박해졌다. 당장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것도 상위 10% 안팎 가입자가 전체 트래픽 자원의 70%를 점유하는 불균형 현상이 깊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업자는 더 이상 투자 여력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인터넷과 콘텐츠 업체에 공동 부담을 요구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 실정이다.
대안은 종량제뿐이다. 트래픽 사용량에 따라 과금하는 쪽으로 개선하는 게 늦었지만 단추를 제대로 끼우는 것이다. 시장도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다. 초기에는 가입자를 늘리는 등 보급과 확산이 목적이었다면 이제 효율적 자원 관리가 우선이다. 게다가 트래픽 분석 기술도 진화했고 이에 따른 비용도 크게 떨어졌다. 더 늦기 전에 산업을 위해 종량제를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 쓰레기도 종량제인 세상이다. 누군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면 빠를수록 좋다.
강병준 벤처과학부장 bjk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