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R&D 없는 새 정부의 출발

내년 예산 작업이 한창이다. 정부 예산 편성은 나라 살림살이를 어떻게 운영하겠다는 계획이자 어떤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정책적 의지의 표현이기에 관심이 집중된다.

바뀐 정부의 첫 해에는 구조상 전 정부가 수립한 예산계획에 기반해 새 정부가 정책을 집행하게 된다. 따라서 현 정부가 정권 말기에 무게를 둔 정책 목표와 새 정부가 출범 초기에 역점을 두는 정책 목표가 충돌해 혼란이 올 가능성이 크다. 2013년이 딱 그렇다.

오는 12월 대권을 잡게 될 새 정부는 국가 성장의 기반이 되는 R&D 투자에 역점을 둘 것임에 분명하다. 출범 초기에는 중장기적인 큰 그림에서 성장기반을 마련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야 하고, 또 지속성장을 위한 투자는 새로 시작하는 정부에게는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배분 조정하고 있는 2013년 예산안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차세대 성장기반에 대한 고민이 완전히 배제돼 있다. 정권 말기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미래에 대한 고민보다는 생색 예산에만 집중돼 있다. 다음 정부는 모르겠고, 당장 시급한 `표`로 돌아올 복지 예산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R&D 예산이 내년 사상 처음으로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그것도 전년대비 10% 이상 삭감까지 논의되고 있다. 이대로 결정될 경우, 새 정부의 출발에는 `R&D` 정책이 실종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R&D 사업의 예산은 10% 이상씩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신규 사업 기획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정권 말기 분위기에서 그려 놓은 대로 예산이 집행되면, 새 정부 의지와는 무관하게 국가 산업의 연구개발은 한 해를 허비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시장과 기술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1년은 시장 주도권을 놓치게 될 수 있는 긴 시간이다. 1년 주도권을 놓치면 10년 뒤쳐지게 된다. R&D는 성장 동력이다. 지금의 산업 강국 수출 강국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정부의 R&D 시드머니는 보이게 안보이게 큰 힘이 됐다. IMF를 버텨낸 지금의 우리 모습도 R&D에 투입한 우리 열정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R&D는 일자리 창출과도 밀접하게 관련된 부분이다. 일시적으로 자금을 직접 풀어주는 복지보다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복지가 가장 바람직한 방향임은 모두가 공감한다.

정부는 2013년 `균형재정`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을 표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의도는 좋지만, 그 선택에서 `미래`를 빼 놓는 것은 심각한 오판이다. 새 정부 출발선에 `균형재정`을 넘겨주는 것 이상으로 `R&D의 단절`을 넘겨주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