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통신비 공약 잇따라 제시…정책 없고, 포퓰리즘만

12월 대선을 앞두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현실성 없는 통신비 인하 공약이 쏟아졌다. 대부분의 가정이 가계 통신비를 부담스러워하는 만큼 낮춰야 한다는 공감대는 있지만 정치권의 공약들은 실현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눈앞의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식 공약보다는 현실성 있는 공약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야는 지난 총선에서 모두 당 차원의 핵심 공약 중 하나로 통신비 인하를 제시했다.

새누리당은 통화요금 20% 인하와 단말기 보조금을 받지 않는 가입자 요금을 20%가량 낮추겠다고 공약했다. 롱텀에벌루션(LTE)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도 도입하겠다고 했다.

민주통합당은 가입비와 기본요금, 문자메시지 요금 등을 폐지하고, 공용 와이파이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당론을 제시했다.

이들 공약은 이달 국회가 개원하면서 문방위 의원들을 중심으로 본격 공론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엔 여야 대선주자들도 앞다퉈 통신비 인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 조짐이다.

민주통합당 대선주자인 김두관 전 경남지사와 정세균 상임고문은 이미 출마선언에 통신비 공약을 담았다. 김 전 지사는 출마선언문을 통해 “통신비는 전기, 수도와 같은 공공재의 성격을 띠고 있다”며 “음성과 문자를 무료화하고, 망을 개방하며 와이파이 정부망을 구축해 통신비를 전기요금, 수도요금처럼 대폭 낮추겠다”고 밝혔다. 음성과 문자 무료화 공약에 대해서는 업계는 물론이고 정치권도 파격이라는 반응이다.

정 고문은 “기본통신비용(음성, 문자)을 4인 가족 기준 5만원 이하로 인하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휴대폰과 초고속인터넷 보급률이 높은 우리나라는 이미 수년 전부터 가계 통신비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정치권이 생활과 밀접한 통신비 인하 공약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이명박정부도 가계 통신비 20% 인하 공약을 내놓아 선거 과정에서 효과를 거뒀다. 지난 총선에서도 각 당이 통신비 공약을 선보였다. 이 때문에 아직 구체적인 공약을 발표하지 않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비롯한 유력 대선 예비후보도 통신비 공약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다. 이명박 정부만 해도 통신비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 구체적인 방법과 대안 없이 20% 인하라는 목표만 제시했기 때문이다.

일부 대선후보가 내놓은 음성과 문자 무료화는 통신사의 핵심 수익원을 포기하라는 말이다. 공약이 현실화하면 이동통신 매출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4인 가족 기준 5만원 이하 공약 역시 이동통신 매출을 절반 이하로 축소해야 가능하다.

통신비 인하를 위해 휴대폰 유통구조를 개선해 불필요한 비용을 줄인다거나 저렴한 요금을 앞세운 이동통신재판매(MVNO) 사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등의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지난 5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내놓은 보고서도 “일회성 통신비 인하나 소매요금 규제 중심의 정부 개입은 이용자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효과를 내기 어렵고, 민간사업자인 이동통신사 경영의지도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정부 개입은 통신시장의 공정한 경쟁과 이동통신사업자의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통신사 한 임원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죽을 맛”이라며 “표를 의식해 무의미하게 내놓는 공약보다 현실성 있는 공약과 이를 실현할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