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소 가전업체 A사는 내년 신제품을 기획하는 데 상당히 애를 먹었다. 10만원 이하로 가격을 맞추면서 원하는 신기능을 탑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 회사 사장은 “중소기업 제품은 무조건 저렴해야 한다는 소비문화가 점점 심화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해외 가전사는 제품 컨셉트에 `프리미엄`을 붙이고 가격을 비싸게 책정하면 없어서 못 팔 지경이지만, 국내 중소기업 제품은 조금만 가격이 오르면 판매에 직격탄을 맞는다”며 “이대로 가다가는 `중소기업 제품=저가품`이라는 인식이 고착화될까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글로벌 가전 대기업에 맞서 틈새시장을 개척하는 중소기업은 해외 프리미엄 가전의 인기에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내수 경기 침체로 가전 시장 전반이 가라앉아 중소 생활가전 시장에까지 악영향을 미쳤지만 해외 프리미엄 가전은 여전히 인기가 고공비행을 하기 때문이다.
다른 중소가전 업체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기존 시장에 없는 획기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게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귀한 제품을 상용화하는 데 당연히 최고급 마감재, 최상의 부품을 쓰고 싶지요. 하지만 중소기업 제품은 비싸면 팔리지 않습니다. 핵심 기능을 최대한 살리면서 최소의 수익까지 담보하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 스펙을 낮출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 초기에 아이디어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선보여 인지도를 높이는 것은 신생 기업의 필수 전략이다. 일정한 시장 규모와 인지도를 갖추면 점차 기능과 성능을 개선하며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성장 수순이다. 하지만 다수 중소가전 업체를 살펴보면 초기 사업 성공에서 더 뻗어나가지 못한다. 신제품이라도 가격이 조금만 오르면 시장 반응은 즉각 냉담해진다.
중소 가전 업체는 아직 중국·대만산이 저가품으로 인식되지만 소비자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국내 중소기업 제품=저가품`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경기 침체에도 신흥 성장국에서도 끄떡없이 한국 기업의 브랜드 파워를 발휘하는 중소기업 프리미엄 생활가전이 더 많아져야 한다. 늘어나는 스마트 가전만큼 소비자의 현명한 판단이 절실하다.
배옥진 전자산업부 witho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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