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림(RIM)`의 몰락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스마트폰 대명사는 캐나다 림(RIM)의 `블랙베리`였다. 깨알 같은 쿼티(QWERTY) 자판을 이용해 이동 중에도 날렵하게 업무용 이메일과 문서를 처리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연인과 데이트할 멋진 장소도 척척 찾아낸다. 앞서가는 비즈니스맨, 차가운 도시남자의 모습을 연출하는데 블랙베리만큼 안성맞춤인 아이콘은 없었다.

[데스크라인]`림(RIM)`의 몰락

그러나 시장이 변했다. 블랙베리 선전에 절치부심하던 경쟁사들은 차도남이나 까도남이 아니더라도 남녀노소 누구나 스마트폰을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냈다. 쿼티 대신 터치 기술을 접목해 손쉽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내놓았다. 앱 장터를 구축해 샘물처럼 날마다 신선한 애플리케이션을 경험할 수 있게 했다.

덕분에 스마트폰 시장은 블랙베리가 전유하던 때와 달리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제조사도 늘고 서비스도 좋아졌으며 고객도 늘었다. 규모의 경제가 갖춰지면서 가격도 싸졌고 통신료도 내려갔다.

반면에 블랙베리는 하루가 다르게 급전직하 중이다. 판매량 감소와 실적악화가 이어졌다. 림은 최근 분기 약 6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순이익이 8000억원이었다. 블랙베리 판매량도 25%가 줄어 780만대에 머물렀다. 결국 견디다 못해 전체 직원 수 3분의 1에 해당하는 5000명을 해고했다.

문제는 림의 문제가 캐나다 국가경제지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6월 캐나다 무역 적자폭은 18억달러로 늘어나 전달보다 2배나 상승했다. 실업률 역시 8개월만에 상승세로 돌아서 7.3%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에 이르자 림 본사가 위치한 캐나다 온타리오주 정부가 해고된 직원들의 재취업 및 창업을 지원하고 나섰다. 구조조정 규모가 워낙 크다보니 지역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림과 캐나다 정부의 현 처지에 `자업자득`이라는 쓴소리를 내놓는다. 림은 캐나다와 공동운명체라고 할 만큼 큰 후광을 입고 성장했다. 연방정부는 블랙베리 초기 물량을 단체 구매로 소화해줬고 주요 지자체와 기업은 블랙베리를 기본 업무용 폰으로 채택했다. 또 연구개발(R&D)비 등 최근 7년여간 약 10억달러에 달하는 세금 감면 혜택도 베풀었다.

이것이 되레 독이 됐다는 지적이다. 보호막 안에서 안주한 림이 시장 변화에 둔감하도록 만들었다는 것.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가 림의 해외 매각설이 나돌자 발끈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기업의 운명은 시장이 결정한다. 블랙베리 최후도 마찬가지다. 안타깝지만 캐나다 정부는 냉정하게 다른 대안을 찾아봐야할 것 같다.

정지연 국제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