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술집에서 만난 안철수, 요즘 이슈 짚어보니…

안철수연구소 대표 시절 안철수 원장을 술집에서 만났다. 2004년 7월 일본 삿포로에서 일어난 일이니 벌써 8년이 넘었다. 한·중·일 3국 정보통신 장관 회담이 열린 삿포로에서 진대제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이 마련한 저녁 식사 자리였다.

정통부 산하 기관장과 통신 3사 대표 등 내로라하는 정보기술(IT) 업계 인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시기 안철수연구소 대표를 맡았던 안 원장은 벤처기업을 대표해 동석했다. 이동통신 번호이동 정책이라는 큰 이슈가 있어서 술자리는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폭탄주가 몇 순배 돌자 안 원장 차례가 됐다. 진 장관이 폭탄주를 건네자 안 원장은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전 안 마십니다”고 대답했다. 순간 주변이 싸늘해졌다. 벤처기업 사장이 감히 장관의 호의를 거절했다며 무례를 탓하는 고성도 나왔다. 모든 사람이 기대 반 우려 반 심정으로 안 원장을 바라봤다. 대개 못 이기는 척 마시길 바랐을 것이다. 안 원장은 여전히 엷은 미소를 띠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전 안 마십니다.”

케케묵은 술자리 후일담을 꺼내는 것은 최근 안 원장을 둘러싼 이슈가 본질을 벗어나지 않았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안 원장을 옹호하거나 힐난한다. 안 원장의 친인척 고용이나 유흥주점 출입 등이 대표적 평가 대상이다. 한 지인이 페이스북에 “최근의 `안철수 현상`을 보면서 정치이상주의와 정치현실주의 담론이 떠오른다”는 글을 올렸다. 내용은 이렇다. 고대 그리스인은 정치인에게 `철인(哲人)`이길 원한 정치이상주의를 신봉했다. 마키아벨리즘 이후 `통치자는 사자의 용맹과 여우의 꾀로 무장해야 한다`는 정치현실주의 시대가 열렸다. 여전히 정치현실주의가 유효하지만 안철수 현상이 정치이상주의를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그렇다. 안철수 현상은 정치이상주의에 가깝다. 현실 정치에 환멸을 느낀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안 원장에게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원장의 높은 지지율에 위기를 느낀 기존 정치권과 보수 언론은 정치이상주의 담론을 앞세워 안 원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직 출마 선언도 정책 발표도 하지 않았지만 오로지 안 원장의 `이미지`를 표적으로 한 십자포화가 불을 뿜는다.

안철수 현상은 지금의 암울한 정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한다. 안 원장이 기득권층에 던지는 `상식`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 정치권 불신 탓에 안 원장에 열광하는 국민의 정서를 이해해야 한다. 안 원장은 성직자가 아니다. 필요하다면 언제든 술집에 갈 수 있는 사람이다. 가족과 친지를 동원해 정치적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사람이다. 정치이상주의가 아닌 정치현실주의에 입각해 `안철수 현상`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장동준 콘텐츠산업부장 dj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