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자의적 콘텐츠 규제가 도를 넘었다. 지식 기반 경제의 밑바탕인 창의적 콘텐츠 생산 및 유통이 벽에 부딪혔다.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스마트폰 게임 셧다운제 강행을 추진하고, 애매한 규정으로 전자책 등 콘텐츠 서비스에 혼란을 가져왔다. 콘텐츠 규제가 창작 의욕을 저해하고, 이용자와 창작자 모두에게 불편과 피해만 끼쳤던 과거 사례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다.
◇스마트폰 게임 셧다운 강행
최근 여성가족부 행보는 스마트폰 게임에도 셧다운제를 확대 적용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확대 적용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11월에 임박해 평가 지표를 내놓아 관련 업계나 다른 부처와 논의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평가 지표는 상식 이하라는 게 콘텐츠 전문가의 중론이다.
모바일 게임 셧다운 적용이 결정돼 내년 5월 시행되면, 우리나라는 사실상 스마트 시대 `갈라파고스`로 전락한다. 앱스토어에서 유통하는 해외 게임에까지 사전 등급 심의를 강제해, 우리나라에서만 애플 앱스토어와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의 게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었던 2년 전 과오를 다시 밟는다.
◇다시 글로벌 스탠더드와 동떨어진 갈라파고스로
해외 게임 업체가 국내 규제에 맞춰 한국 이용자의 연령 확인을 위한 조치를 할 리 만무하다. 국내법을 따를 수 없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게임 카테고리 폐쇄 등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국내 이용자는 스마트폰 게임을 이용할 수 없거나 해외 계정으로 게임을 구매해야 한다. 국내 게임 개발사는 사용자 연령 확인 기술을 적용하는 부담을 진다.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 수집을 금지하는 정책 기조와도 배치된다.
우리나라는 오픈마켓 게임 서비스를 못해 2년 이상 세계 시장에 뒤처졌다. 올해 상반기 국내서 자율 심의를 거친 모바일 게임은 10만개를 웃돈다. 앱스토어 오픈 1년 만에 100배 가까이 늘었다. 이런 콘텐츠 산업의 에너지가 2년이 채 안 돼 다시 꺾일 상황이다.
◇원칙 없는 묻지마 규제
사회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특정 콘텐츠에서 희생양을 찾는 분위기가 문제로 꼽힌다. 상반기 학교 폭력이 문제가 되자, 웹툰 사전 심의를 실시하려 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아동 성폭력이 문제가 되자 경찰이 실적 쌓기를 위해 음란물 단속에 나서면서 이북 업계도 유탄을 맞았다. 여론을 업고 애매한 규정을 앞세워 단속해 서비스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다.
장기영 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이미 성숙한 민주사회에 진입한 상황에서 등급표시 확실히 하고 정상적으로 서비스되던 콘텐츠는 자율 규제에 맡기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했다.
콘텐츠 유통을 제약하는 정부 규제가 디바이스와 콘텐츠가 통합되는 기술 산업 흐름에도 역행한다. 구글은 스마트패드 넥서스7 한국 출시를 발표하며 영화와 이북 서비스도 함께 선보였다. 애플과 아마존 등 국내외 유수 기업들도 유사한 통합 전략을 취한다. 국경이 없어진 글로벌 시장에서 정부 규제로 우리 콘텐츠만 소외되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는 “정부의 규제일변도 방침으로 정책 실효성도 잃고 건전한 게임문화까지 말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음란물 역시 사법부의 판단 대상인데, 정부 부처가 교육과 정보 전달보나는 밑도 끝도 없이 규제에 나선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