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한 2007년 12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뜨고 정부 조직개편이 논의되면서 눈길을 끈 인사 두 명이 있었다. 인수위 부위원장인 K씨와 참여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Y씨. K씨는 국회 과기정위에서 위원장을 포함해 10년 이상을 활동했고, Y씨는 산업 정책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로 통했다.
두 사람 다 과학기술부와 정보통신부 해체에 깊숙이 관여했다. 부처 간 영역 다툼을 해소하고 융합 시대에 적극 대응하자는 게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부처 개편이 제대로 된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해치워졌다는 것을. 부처 이기주의의 병폐를 주요 이유로 내세웠으면서도 정작 부처 이기주의 논리로 2개월 만에 뚝딱 개편했다. 특히 정치적인 요인 이외에도 Y씨와 전직 해당 부처 장관과의 사감이 작용했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현 정부 들어 국회의장까지 지낸 K씨는 부처 개편의 잘못을 인정했다. 졸속이었다는 점도 시인했다. 차제에 부처 개편 시에는 우리만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냈다. 부활론이지만 고백록 수준이다.
지난 7일 안철수 대통령 후보는 국가미래전략 전담 부처를 설립하겠다고 했다. 과학기술, 정보통신, 산업, 사회정책 등 다양한 정책 분야별로 중요한 미래 의제를 관리하는 부처다. 그의 창조경제론도 실상은 이 같은 분야를 기반으로 한다. 안 후보 본인이 정보기술(IT)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상수인 국가미래전략 전담 부처론을 내놓으면서 다른 전담 부처론은 변수가 됐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과학기술부 신설을 약속했다. 스마트 뉴딜도 내놨다. IT와 과학기술을 전통산업과 접목해 대규모 일자리 창출, 창업경제로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학기술부를 독립부처화하기에는 조직의 위상이 줄었다는 점에서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합친 정보과학부론이 흘러나왔다. 비전 없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 후보는 그간 당론으로 채택했던 정보통신미디어부 신설을 지난달 21일 전자신문 창간 30주년 기념식에서 대선 공약으로 공식화했다. 제2의 IT 혁명을 이끌기 위해 정보통신미디어부 신설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IT 인재풀이 부족하고 정책에 구체성이 없다는 평가를 부처 신설론으로 돌파하겠다는 것으로 비친다.
부처 개편 논의가 자칫 산으로 갈까 걱정된다. 대선 후보 셈법이 다르고 부처 간 이해가 충돌하면서 더 그렇다. 학자 간에도 이견이 크다. 논쟁이 격화하면서 토론회에서도 생각이 다른 학자 간 고성이 오갈 정도다. 문제는 부처 개편 논의가 달아오르면서 과거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를 향한 비판의 강도가 더욱 세진다는 점이다. 배경을 의심해볼 만하다. 진흙탕 논리로 끌고 가는 것일까. 양비론도 고개를 든다. 부처 개편 논의 자체를 과거 회귀로 몰아붙이는 논법도 화려하다.
부처 주변에서 특히 그렇다. 방송과 정보통신기술(ICT), 디지털콘텐츠, 정보화를 포괄하는 독임제 부처 얘기가 나오는가 하면, 규제와 진흥을 분리하고 ICT 진흥과 거버넌스를 한쪽으로 밀어주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오히려 디지털콘텐츠의 중요성을 감안, 문화미디어부를 만드는 게 낫다는 얘기도 나돈다. 전국 조직인 우정사업본부 얘기도 꾸준히 나온다.
과연 논의의 다양성으로만 봐줄 수 있을까. 현 정부 인수위 시절과 동일한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미래지향적인 논의는 생략된 채 K씨, Y씨 같은 인사가 언제든 뚝딱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