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암 억제 유전자의 신호전달 네트워크를 찾아내 유방암 세포를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약물조합을 찾아냈다. 여성암 가운데 가장 흔한 암으로 지적되는 유방암을 비롯해 신개념 암 치료제 개발에 새로운 단초를 열었다. 조광현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석좌교수 연구팀은 암 발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암 억제 유전자(p53)의 조절 네트워크를 구명해 유방암 세포의 자살을 유도하는 최적의 약물 조합을 알아냈다고 19일 밝혔다. IT와 바이오테크놀로지(BT) 융합연구인 시스템 생물학으로 암치료 방법을 풀어냈다.
조 교수팀이 유방암 세포 억제를 위해 집중 연구한 부분은 유전자 수호자로 알려진 암 억제 단백질 `p53`이다. p53은 33년 전 처음 발견된 후 세포가 자라고 죽는 체계(주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몸의 세포가 손상되거나 잘못 작동하면 p53은 세포주기의 진행을 멈춘다. 손상된 DNA 복제는 억제하고 망가진 세포의 복구를 시도한다. p53은 세포가 복구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세포가 스스로 자살하도록 유도한다.
지금까지 p53 임상실험에서는 기대와는 달리 암 억제 효과가 낮거나 부작용이 발생하는 등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p53은 단독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신호전달 네트워크에 의해 조절되는데 p53만을 집중 연구했기 때문이다.
조 교수팀은 p53과 관련된 모든 실험 데이터를 모아 조절 네트워크를 수학모형으로 구축했다. 대규모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을 통해 p53의 역학적 변화에 따른 세포 증식과 사멸 조절과정을 밝혀내고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방법을 찾았다. 유방암 세포 네트워크 모형의 분석 결과로 기존 표적항암약물(뉴트린)과 네트워크의 핵심 회로를 억제하는 표적약물(Wip1 억제제)을 조합하면 유방암 세포를 효율적으로 죽일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조광현 교수는 “세포 분자는 대부분 복잡한 조절관계에 있기 때문에 기존의 직관적 생물학 연구로는 원리를 밝히는 데 한계가 있다”며 “시스템 생물학으로 한계를 극복해 암세포 조절과정을 네트워크 차원에서 분석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연구의의를 밝혔다. 연구 결과는 세포신호전달분야 학술지인 `사이언스 시그널링` 20일자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시스템 생물학=복잡한 생명현상이 단일 요소 때문이 아니라 구성요소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한 것임을 이해하는 접근법. IT의 수학 모델링과 컴퓨터시뮬레이션, BT의 분자세포생물학 실험을 융합해 접근해 시스템 차원의 근본적인 기제를 규명하는 21세기 새로운 융합연구 패러다임.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