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적이다. 이웃나라 일본을 대표하는 전자 3사의 국제신용등급이 투자부적격 수준으로 강등됐다. 태양처럼 우뚝 섰다던 전자제국 일본이 사실상 무너졌다.
이변이 없는 한 올해 파나소닉은 7650억엔이라는 대규모 적자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샤프 역시 4500억엔의 손실이 예상된다. 소니는 일단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지만 7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소니의 흑자 예상은 보험·은행 등 금융에 기댄 것이다. 본업인 전자사업은 적자가 불가피하다. 소니·파나소닉·샤프의 주가는 최근 30여년 사이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한마디로 소니의 `워크맨`, 샤프의 `샤프펜슬`의 전설은 이제 옛이야기가 됐다.
우리는 어떤가. 지표로만 보면 유럽과 일본에 비해 상당히 견조한 흐름이다. 정보기술(IT) 수출은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지난달 IT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1% 증가한 145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휴대폰과 반도체 수출이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특히 3분기 매출 52조원, 영업이익 8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올해 매출 200조원, 영업이익 20조원 돌파가 확실시된다.
애플발 혁신이 퇴조하면서 삼성의 위상이 오히려 더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내년 이동전화 가입자가 세계 인구 규모 70억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아시아·남미 등의 스마트폰 수요가 급증하고 동유럽과 아프리카 인구 3분의 1 이상이 스마트폰을 이용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최대 수혜자는 삼성전자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러나 과연 우리 경제가 삼성의 그것처럼 희망적인가. 쉽지 않다. 삼성과 몇몇 대기업 실적을 빼면 대부분의 기업은 우려스러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산업과 기업의 편중·편식 현상이 심화했다는 이야기다. 메모리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 등에서 세계 시장을 쥐락펴락한다. 휴대폰도 세계 시장 1위다. 소프트웨어(SW) 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 2.2%와 비교된다. 비메모리반도체의 시장 점유율도 5.5%에 불과하다. 소재의 해외 의존도 역시 심각하다. 디스플레이·발광다이오드(LED)·전지·반도체 등에 쓰이는 대부분의 소재를 일본 등지에서 수입한다.
전형적인 대기업 의존적 산업 구조다. 우리 경제에서 30대 기업의 비중이 절대적이고, 30대 기업 이익의 55%를 삼성·현대차가 점유했다. 오죽하면 현 경제 구조를 대기업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으로 묘사했겠는가.
중소기업을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5.6%인데 IT 중소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3.4%에 불과하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많은 중소기업이 대기업의 하도급과 재하도급 구조로 연결됐는데 영업이익률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상생의 구조가 아닌 이익 불균형 구조가 심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정책당국 주변에는 낙관론자가 넘쳐난다. 삼성전자의 착시효과다. 삼성전자의 성취가 경제 전반의 문제점을 가리고 우려를 둔감하게 만드는 격이다. SW·장비업계만 봐도 어려움은 더욱 가중됐다. 삼성·LG의 협력업체를 제외하면 많은 기업이 출혈경쟁과 외산 공포에 시달리면서 생존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호 윈윈하는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했을 때의 결과는 참담하다. 미·영·일 등 선진국 기업들의 사례가 무언의 답이다.
여야의 경제민주화가 답이 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윈윈하는 상생의 생태계를 구축하고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는 길밖에 없다. 일본 전자 3사의 몰락이 주는 교훈이다. 지금 1등으로 올라선 삼성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긴장을 늦추고 혁신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 경제는 단번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영원한 1등은 영원히 없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