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다가오면서 증권사 리서치센터가 바빠졌다. 투자자에게 내년 시장이 이렇게 전개되니 투자를 준비하라는 가이드라인을 내놓기 위해서다. 올해도 여러 증권사들이 저마다 내년도 시장 전망보고서를 내고 전문 투자자와 개인 투자자를 대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일부 증권사는 넓은 공간을 빌려 대규모 초청 행사를 치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증권담당 기자를 하면서 연말이면 듣는 새해 전망은 너무나 똑같다. 바로 `상저하고(上低下高)`다. 상반기가 경기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하반기는 회복될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 전망 역시 증권사들은 이구동성으로 `상저하고`를 외친다. 지난해에도 증권사 리서치센터에서 예측한 올해 전망이 그랬다. 우스갯소리로 10년째 들었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이러한 예측은 매년 빗나간다. 올해 그리스와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재정 위기로 연초부터 주가가 약하게 시작했지만 중국과 미국의 경기 회복에 힘입어 코스피지수는 2200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대부분의 전망이었다. 일부 증권사는 올해 코스피지수 전망을 최대 2300∼2500까지 내다보기도 했다.
이 예측도 빛이 바랬다. 상반기 고점을 찍었던 지수는 유럽과 미국의 재정 위기까지 겹치면서 오히려 연초 대비 후퇴했다. 연말이 조금 남았지만 지수가 2000선을 다시 넘기는 힘겨워 보인다. 올해도 `상저하고`란 예측은 틀린 전망이 됐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가 수출에 의존하다 보니 대외 경제에 취약해 예측이 어려운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증권사 한켠에서 데이터를 모아놓고 한해를 예측하고 세계를 예측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매년 연말이면 외치는 `상저하고`는 뭔가 꺼림칙하다. 증권사마다 찍어 내놓은 것 같은 천편일률적 전망이 투자자에게 환상만 심어주기 십상이어서다.
주식투자를 유인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증권사들이 투자자에게 투자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희망을 주는 메시지도 일부 있다”고 인정했다.
문제는 증권사마다 같은 전망으로는 차별화된 투자전략 제시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새해 주식시장 출발 역시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증시 애널리스트나 리서치센터가 미래를 예측하는 신은 아니다. 예측은 현실과 다를 수 있다. 그럴지라도 천편일률적인 전망이 아니라 증권사마다 나름의 예측치와 남다른 전략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이경민 경제금융부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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